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떠나던 날-결국은 사람
한 치 앞도 예측 불가했다.
볼리비아 투어가 끝나고 버스를 타면 도착하는 대로 국경을 넘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다 쓴 유심 때문에 길거리에서 산 유심은 잘 작동할 줄 알았다. 버스에 올라타니 얼마 후에 데이터는 먹통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새벽이 되었고 국경은 굳건히 닫혀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서운 것은 사람이었고 필요한 것도 사람이었다.
매일 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어느 날엔 친구도 될 수 있다.
'왕가위 감독' 영화 <중경삼림, 1994> 中 경찰 223 대사
'아. 오늘 국경 넘으려고 했는데'
탄식이 나온다. 5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국경도시 비야손(Villazon)에서는 칠흑 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치안은 괜찮나? 이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다가 총에 쏘이는 거 아니야?'
두려움이 엄습하며 질문이 쏟아진다. 이 시대의 인터넷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휴대폰이 먹통이란 이유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리자마자 다른 승객들을 살폈다.
'제발. 나와 같은 상황인 사람이 있었으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여행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포착되자 망설임 없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절박했던 나는 주저리주저리 도저히 국경을 못 넘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영국인 부부와 독일 친구는 자신들도 방금 만나서 같이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다면서 함께 가자고 제안해줬다.
"정말 감사해요!"
우리는 함께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띵-동"
호텔 주인이 눈을 비비며 내려오셨다. 우리는 모두 새벽에 문전박대를 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서 체크인을 해주었다. 우리는 각자 방에 들어가면서 내일 아침 8시에 조식을 먹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갑자기 형성된 뜻밖의 '함께'였다. 드디어 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너무 추워서 냉동인간이 되어가는 걸 몸소 느꼈다. 패딩과 판초로 몸을 둘러싸고 국경에서 안 좋은 일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잠을 잤다.
"아침 8시"
독일 친구와 접선했다. 영국 부부는 이곳에 좀 더 머문다고 했다. 독일 친구와 나는 첫 번째 목표 지점이 아르헨티나의 도시 '살타'로 같았다. 우리는 함께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하면서 아침의 빵을 우걱우걱 씹었다. 우리는 국경을 넘고 터미널(라끼아까)로 향한 뒤에 또 살타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각자 준비를 하고 호텔 입구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도착한 국경은 황량해 보였다. 국경에서 말이 안 통하는 소녀와의 말씨름 끝에 서류를 제대로 뽑고 직원에게 도장을 받게 되었다.
"(표지판 앞) 볼리비아 / (표지판 뒤) 아르헨티나"
묘한 기분으로 표지판의 앞뒤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걸음 한 발자국에 달라지는 나라.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를 나누는 선에 서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다. 국경을 넘는 길에 독일 친구는 볼리비아로 향하는 여행객과 돈을 맞바꿨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라끼아까 마을의 버스터미널에 내려 살타로 가는 버스를 바로 예매했다. 현금밖에 안 받는 이곳에서 ATM 기계를 못 찾은 나를 대신하여 독일 친구가 돈을 빌려주었다. 계속된 이동에 지친 우리는 다시 배가 고파왔다.
"그런데 우리 통성명했나? 난 베네딕트야"
우리는 하루 종일 같이 다녔고 심지어 돈까지 빌려준 사이였으면서 밥을 먹을 때에서야 통성명을 했다. 서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과제들을 수행해온 우리의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보단 직면한 문제 해결이 중요했던 것 같았다. 국경을 넘고 숨통이 트이니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었다. 이후 문구점에서 작동되지 않는 유심을 사고는 끙끙 앓다가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올라탔다.
7시간의 버스를 낮에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낮에는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우리는 장작 7시간에 거쳐서 서로의 여행, 문화, 교육,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갑자기 형성된 '함께'는 이젠 서로 의지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를 알아가는 '친구'로 변화했다.
"어! 무지개 산이다!"
고개를 돌리다가 창밖에 있던 무지개산을 마주했다. 비니쿤카와는 또 다른 무지개 모양의 산이었다. 은은하게 다른 무늬가 반복되는 형상을 띄고 있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묘미가 이런 것일까. 버스행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화려한 풍경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묘하게 비슷하게 삭막한 길들이 계속되었고 갑자기 쉬는 버스는 1시간이 넘도록 움직이지 않기도 했다.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버스기사의 휴식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결국 9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살타에 도착했다.
구름이 많고 빨갛던 살타의 하늘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든든한 독일 친구는 호텔방을 두 개 예약하고 능숙하게 택시를 잡았다. 호텔방에서 긴장을 놓고 휴식을 취하다 보니 배가 고파왔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밖을 나섰다. 피자집에 들어섰다. 살타의 맥주와 피자를 먹으면서 웃으면서 무릎 아픈 이동 뿐이던 하루를 이제는 웃으면서 돌아봤다. 숙소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조식 시간의 만남을 약속하곤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러니하다.
국경에 도착했을 때 무서웠던 것은 사람이었지만 필요했던 것도 사람이었다. 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고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인가 보다. 여행객이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 우리는 완벽히 타인이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보여준 신뢰로 인해 우린 얇은 실로 이어진 친구가 되었다. 혼자서 떠난 여행에서는 사람에게 여러 번 상처받아도 또다시 사람에게 치유받고자 하면서 지속적으로 사람을 갈망했다. 그렇게 서로 알지도 못하던 우리는 어느 날 친구가 되었다.
*우유니에서 살타로 가는 법(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육로 이동편)
육로를 통해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1) 우유니-> 비야손(볼리비아의 국경도시): 우유니 버스터미널에서 국경도시인 비야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8시간동안 이동한다.
2) 비야손-> 라끼아까(아르헨티나의 국경도시): 국경으로 이동하여 입국심사를 완료한 후, 택시를 타고 라끼아까 버스 터미널로 이동한다.
3) 라끼아까-> 살타: 라끼아까 버스 터미널에서 살타로 가는 버스를 타고 7시간을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