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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Mom Box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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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Jul 09. 2024

같은 노래를 부르길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은 놀랍다네~~

안녕, 딸들!

오늘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뵙고 왔어. 엄마는 요새 외가댁 갈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찬송가를 부른다. 할아버지의 기억력이 자꾸 사라져 가고 있고 마음도 약해지시는데 함께 찬양을 할 때만큼은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있어서 엄마 마음이 흐림에서 맑음으로 바뀌거든. 오늘은 할아버지가 화음도 넣으시더라.


함께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건 참 멋진 일인 것 같다. 엄마는 어렸을 때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했었어. 어렸을 때니까 각각의 파트 연습을 하는 과정이 참 지루하고 힘들었지. 또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 선생님들은 유독 엄하고 무섭잖니... 어린아이들을 통솔하려니까 목소리도 크고... 그래서 연습이 더 싫었어. 엄마는 어려서부터 묵직한 목소리여서 알토를 했는데 멜로디가 아닌 음을 거의 외우다시피 반복하는 게 지난했지. 그런데도 계속 합창단 활동을 했던 까닭은 따로 놀던 소리가 하나로 합쳐질 때의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야. 연습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정도로 한 목소리로 내는 하모니는 엄마를 다른 세계로 인도했어.


외할아버지는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늘 음악을 틀어놓으셨어. 할아버지가 모아 놓으셨던 LP판도 꽤 많았지. 할아버지가 늘 틀어놓으시던 93.1 MHz 클래식 FM을 엄마도 자연스럽게 애청하게 됐어. 김세원의 '가정음악', 이금희의 '노래의 날개 위에'가 생각나는 걸 보면 진짜 오래전부터 클래식 FM과 친구였던 것 같다. 그렇게 음악이 흐르던 분위기에서 시집을 갔는데 시댁에서는 음악이라고 할 만한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 소리라고는 TV 소리뿐.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좀 짠하단다. 


엄마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를 만들라'는 거야. 지금 우리처럼. 지난 주말에 막내가 기말고사 끝나고 집에 왔잖니. 밤이 늦었지만 우린 오랜만에 함께 노래(찬양)를 불렀어. 아빠가 튼 노래를 너희도 부르고, 너희가 튼 노래를 엄마, 아빠도 따라 부르며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라는 것이 사실 세대 차이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잖니? 너희가 좋아하는 장르를 엄마, 아빠가 따라가기 어렵고, 사실 엄마, 아빠 세대의 노래를 너희들이 좋아하긴 쉽지 않아. 그런데 우리에게 진심을 담아 한 곳을 바라보며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하더라. 서로가 좋아하는 플리(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가족, 너희도 만들길 기도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는 가족은 어떤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야.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가 많은데 아이들에게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느냐고 물을 때가 있어. 제2차 세계 대전 이야기를 할 때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런데 의외로 그 영화를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많아. 그런 영화가 있었냐... 뮤지컬 싫어한다... 옛날 영화 안 본다... 등의 이유로. 그런 명작을 놓친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할아버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 LP판과 카세트테이프를 늘 틀어주셨어. 영화관에서 처음 보았던 때의 감동도 이야기해 주셨고. 엄마의 어린 시절이 햇빛 가득한 양지만 있는 건 아니야. 어쩌면 어두운 구석이 더 많았던 것 같아. 하지만 그 어두운 구석을 따스한 느낌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음악이었어. 할아버지가 틀어주시던 음악이 불안하고 슬플 수 있었던 엄마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고 생각해.

외할아버지의 정신이 좀 온전하셨을 때, 우리 가족만 할아버지댁에 있었던 어느 오후였어. TV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하는 거야. 삼대가 둘러앉아 DVD가 마르고 닳도록 봤던 그 영화를 또 보았지. 그날 엄마는 '영화' 보다는 '우리'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따라 부르시는 '도레미송', 할머니의 미소, 엄마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는 아들의 손가락, 아빠 다리 사이에 앉은 큰딸, 엄마 허벅지를 베개 삼고 누운 둘째... 이 모든 것이 사진처럼 엄마의 마음에 남아있어. 영화 속의 노래하는 가족은 똘똘 뭉쳐 나치를 피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자유를 찾아가지. 노래하는 우리 가족은 어디쯤 와있을까? 우리도 똘똘 뭉쳐 잘 싸우고 있는 것 같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우리는 같은 노래를 부르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 

너희가 만들 가족도 노래를 공유하는 가족이길, 같은 노래를 부르길!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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