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집에 손님이 오시잖니? 그래서 미리미리 묵은 먼지들을 떨어내느라 엄마가 요새 좀 바쁘게 지낸다. 오늘 엄마의 청소 구역은 책장이었어. 책은 그렇게 정리를 하고 또 해도 계속 늘어나더라. 오늘도 팔아도 될 책, 버려야 할 책 등 분류를 하는데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책들이 눈에 띄었고 또 한참을 앉아서 뒤적뒤적 들여다보고 있었단다.
세상은 막 떠들지. 어려서 책을 열심히 읽은 아이들이 문해력이 좋아진다고. 문해력은 정보를 이해하고 의미 있는 대화에 참여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야. 그런데 왜 엄마들이 문해력에 그토록 흥분을 할까? 문해력이 높은 수능 점수를 담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야. 책을 읽혀야 하는 이유가 겨우 수능 성적으로 귀결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독서는 학습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단다.
너희들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기쁨의 보석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지만 유난히 반짝이는 지점에 책이 있었던 것 같아. 밤에 셋을 눕혀놓고 딱 한 챕터만 읽겠다고 하다가 '조금만 더' 소리에 잠잘 시간을 훨씬 넘기기도 했고, 엄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너희 재우고 다 읽어버리기도 했지. 너희가 점점 자라니 숙제도 있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달라져서 책을 한동안 못 읽어주다가 생각해 낸 게 저녁 밥상 책 읽기였어. 기억나니? 엄마는 밥을 차리면서 대충 먹거나 다이어트한답시고 저녁을 거르고, 너희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옆에서 책을 읽어주었었지. 만약 누가 시켜서 했다거나 의무감에 했다면 금방 지쳤을 거야. 엄마가 혹 잊으면 너희가 엄마를 리마인드 해줬잖니? '엄마~~ 책!' 책의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 또 읽어달라는 소리가 엄마 귀엔 음악처럼 들렸단다.
여러 책들이 있지만 엄마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작품 몇 개만 나눠볼까? 엄마의 독서록, 샘의 독서 일기 매거진 (brunch.co.kr)에 여러 작품들이 있긴 한데 거기엔 없는 작품들, 너희가 기억하는지 보자.
엄마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인공들은 늘 연약한 아이들이야. 책 읽다가 목 놓아 울게 했던 그 아이는 <내 짝꿍 최영대>의 주인공 최영대. 영대는 엄마 없는 아이야. 씻지 않아 더럽고 준비물도 안 챙겨 오고 행동도 느린 데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지. 아이들은 불쌍한 영대를 계속 놀린다. 경주 수학여행에서 '엄마 없는 바보'라는 놀림을 받고 엉엉 우는 영대를 보며 엄마 눈에도 눈물이 좀 고였어. 그런데 엄마가 펑펑 운 장면은 영대를 바보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하나둘 영대에게 경주에서 산 배지를 달아주던 장면이야. 영대가 함부로 놀려도 되는 바보가 아니라 엄마 잃은 아픔에 말까지 잃은 가여운 '친구'라는 걸 깨달은 장면. 엄마는 영대의 엄마가 된 것처럼 울었어. 엄마가 우니까 너희들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 한번 보고 책 한번 보고 그랬었지. "엉~엉~ 영대가 이제 말을 해~~ 엉~엉~~" 이런 순간에 아이들이 공감을 배우는 거 아닐까? 주책없이 슬프다고 울어재끼고 웃기면 하하 호호 웃어젖히는 엄마와 책을 읽는 아이는 남의 감정도 소중히 여기고 나의 감정도 아끼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 같아. 너희들처럼. 그러니 너희들도 엄마가 했듯 시간과 때를 잘 살펴서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되길 바라.
우리가 함께 읽은 책 목록은 길고 길지.
뽀르뚜까 아저씨의 죽음 앞에 '왜요?'라고 계속 물르며 울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신비한 시간 여행과 반전이 멋진 <한밤 중 톰의 정원에서>
목이 쉬도록 단숨에 읽어버린 <멋진 여우씨>와 로알 달의 수많은 책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토록 생동감 있게 그린 린드그렌 선생님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섀넌 헤일의 프린세스 시리즈 몽땅
흥미진진, 끊어 읽을 수 없었던 탐정 칼레 시리즈 몽땅...
방금 이 책들의 목록을 이야기하며 우리 함박웃음을 지었지.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던 집의 구조가 아직도 떠오른다는 이야기에 엄마의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구나. 너희가 엄마와 나눈 이 기쁨을 너희의 아이들과도 꼭 나누길 바란다. 문해력을 키워주기 위해 의무감으로 하지 말고 꼭 너의 충만한 감동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읽기가 되길~~
엄마가 수업을 위해 방문하는 집집마다 전집이 거실의 상석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본단다. 그 위용이 대단해서 어른인 나도 압도당할 지경인데, 전집 한번 째려보고 자신을 째려보는 엄마의 눈초리까지 감당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각 잡고 꽂혀있는 전집들이 몇 년 동안 순서 하나 바뀌지 않고 자리보전하고 있는 것을 늘 확인해. 엄마들은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전집을 구매할 거야. 내 아이가 시기별로 습득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늘 있는데, 각 연령 대 별로 읽어야 할 책들이 잘 구성된 전집은 매우 매력적이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들이 그렇게 구매한 것은 책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나중에 너희들이 엄마가 되면 두려움을 접고 조금 부지런해지기를 선택하자. 엄마가 직접 고르는 책, 엄마가 먼저 읽어보고 감동받은 책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아이 손잡고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물론 이게 힘들다. 만화책을 고를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아이와 협상을 하자) 함께 읽어줘야 해. 그 과정 없이 엄마가 일방적으로 큰돈 들여 장만해 놓은 책들은 아이들에겐 너무나 하기 싫은 숙제가 된다. 평생 친구가 되어야 할 책이 짐이 되다니... 너무 슬픈 일이다.
물론 좋은 전집도 많아. 좋은 출판사에서 나온 클래식은 정말 훌륭하다. 그러나 이것도 통으로 들여놓지 않기를 추천한다. 아이가 한 권 읽어내면 그다음 책을 권하는 방식이 아이의 독서 성취감을 높여줄 거야. 너희들이 가졌던 전집은 전래 동화가 유일했어. 전래 동화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좋아하는 장르잖니. 좋은 출판사에서 나온 전래 동화 전집은 소장하고 마르고 닳도록 읽히라고 권하고 싶다. 그 외에는 아이의 관심에 따라 또 엄마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때그때 구매해서 책장을 조금씩 채워 가렴. 알록달록, 키도 제각각, 뚱뚱한 책, 날씬한 책... 화려한 무지개책장을 만들어 보는 거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멋진 세계를 찾아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