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엄마가 아이들과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토의 수업을 했다. 요즘 신조어와 줄임말이 너무 많아서 세대 간 의사소통에 장애가 오고 국어 문법 파괴가 우려스럽다는 거야. 엄마는 별로 걱정은 안 해. 실컷 쓰다가 지겨워지면 없어지는 게 신조어와 줄임말이잖니. 만약 그것들이 살아남는다면 그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엄마는 줄임말은 정말 별로야. 좀 얄밉고 없어 보인달까? 제 딴에는 한껏 멋 냈는데 촌스럽기 그지없는 패션을 봤을 때의 느낌이야. 그런데 신박한 신조어는 뭐랄까 힙해. 어떤 때는 경외심마저 들 때도 있어. 그중에서도 요새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신조어가 있었는데 그건 '멍청 비용'이란 단어야. 무슨 말인지 딱 감이 왔지? 학자님들은 문법 파괴라고 딴지를 거시겠지만 엄마 생각엔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명작이라고 생각해. 왜 이렇게 신조어 찬양을 했냐면 얼마 전 엄마가 그 멍청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야. 내비게이션의 '잔소리'를 무시해서...ㅠㅠㅠ
어린이 보호구역은 마의 구간이야. 거기서 엄마, 아빠가 낸 멍청 비용만 해도 수십만 원이다. 위반 사유는 여러 가지. 속도위반도 해봤고, 신호 위반도 했지. 이번은 속도위반이었어. 몇 주 전 월요일 아침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시고 친구분들 모임에 모셔다 드리기로 했거든. 어르신들 기다리실까 봐 엄마 마음이 급했던 거야. 목동까지 달려야 하니까. 구불구불 홍제천을 따라 난 길 있잖아? 5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30km 속도제한 구역이 세 군데나 있는 몹쓸 길이지. '땡, 땡, 땡' 경고음이 울리면서 속도를 낮추라는 여자의 잔소리가 분명히 나왔을 텐데 왜 엄마는 그 길에서 13만 원짜리 속도위반 범칙금을 물게 되었을까? 내비게이션은 그런 때 쓰라고 달려있는 것인데 말이야.
오늘의 주제가 비로소 나온다. 엄마는 그 멍청 비용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봤고, 엄마가 내비게이션의 경고를 잔소리로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가 설정을 새롭게 하면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쓰는 내비게이션의 그 여인네는 단속 카메라가 설치된 곳에서 600미터 전부터 땡땡 거리면서 떠드는 거야. 얼마나 시끄러운지... 그럼 엄마는 생각하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왜 이래! 다른 차들은 쌩쌩 가는데 나만 거북이처럼 기어가라는 거야? 저기까지? 으이그... 알았다, 알았어. 조용히 좀 해라.' 그녀와 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 거야. 그렇게 그녀의 경고는 배경음이 되어버렸고 엄마는 멍청 비용을 치르게 되었지. ㅠㅠㅠ
잔소리의 사전적 의미를 한번 살펴볼까?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말'이라고 되어있네. 내비게이션, 그녀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지. 꼭 필요한 말이었어. 엄마의 목숨을 지키려 한 것일 수도 있어. 그런데도 엄마가 그 소리를 무시하게 된 것은 그 소리가 꼭 필요한 지점과 시기가 있는데 너무 일찍부터 떠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가 잔소리가 많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너희도 다른 엄마를 둔 적이 없으니 비교가 잘 안 되겠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엄마가 너희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여기며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았던 적이 많은 것 같아. 알아서 잘할 텐데 그리고 계획이 다 있을 텐데 엄마가 저 멀리 앞서 나가 빨리 오라고, 하라고 채근했지. 고쳤으면 하는 것, 했으면 하는 것,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만 이야기해도 들어줄 만한 소리였을텐데 예전 일들을 소급해 와서 너희 마음을 쿡쿡 많이 찔렀다. 미안해.
그런데 엄마도 엄마 노릇은 처음이라 세련된 잔소리를 못해서 그렇지 잔소리가 꽤 쓸모 있단다. 엄마는 제대로 못했지만 너희는 멋지게 잔소리하는 엄마가 되길 바라.
대개 잔소리는 화가 난 상태에서 하게 되잖아. 그런데 화난 상태로는 말하지 말라는구나. 평상심을 회복한 다음에 전달하고 싶은 말을 하래.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래. 아이를 면박 주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려고 잔소리 시작하는 부모는 없을 거야. 그런데 하다 보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주기까지 하지. 아이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이니 아이의 말을 먼저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도 잘 못한 걸 너희에게 하라고 하는 글을 쓰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서 Mom Box는 반성문이 될 예정이라고 했잖니? ^^;
서천석 선생님은 <우리 아이 괜찮아요>에서 아이의 잘못을 보았을 때 되뇌면 좋을 말을 추천해 주셨어.
1. 아이는 원래 말썽을 부리는 존재다. 그래야 건강한 아이다.
2. 잎으로 1년 뒤, 오늘 아이가 한 잘못이 기억날까? 그만큼 중요한 일인가?
3. 나는 이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나? 한심한 실수를 저지르고 속상해할 때 남이 비난하면 어떤 기분일까?
4. 지금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한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해결될까?
5. 엎질러진 물이다. 나까지 소리 질러 오늘 하루를 더 망치지 말자.
이거 외워야겠다.
내비게이션, 그녀가 해주는 말 중에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아니?
"다음 안내 시까지 직진입니다."
이 안내를 받으면 마음이 너무 편해지는 거 있지? 그럼 그다음 안내를 기다리는 마음이 생긴다. 엄마도 너희에게 이렇게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