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 HK 도약관
● 장소 경기 화성군 양감면 사릅재길 117
● 완공 2015년 1월
● 설계 임재용·건축사무소 OCA
● 수상 2015년 한국건축가협회상
2015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공장의 하얀 불빛은/오늘도 그렇게 쓸쓸했지요/밤하늘에는 작은 별 하나가/내 마음같이 울고 있네요.”
신형원과 김광석이 노래한 ‘외사랑’(한율 작사·작곡)의 구절은 이렇게 공장의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을 대비한다. 공장의 불빛은 짝사랑에 지친 여공의 마음처럼 차갑고 외롭다. 밤하늘의 별빛은 반대로 여공의 짝사랑에 공명해주고 대신 울어주는 온기를 지녔다.
실제 공장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거대한 기계장비와 제품이 줄지어 이동하는 조립라인.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며 왠지 겉도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기계가 먼저고 사람은 그다음이다. 사람들이 공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기계를 위한 공간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거기엔 미학적 요소도 한몫을 한다. 기계적 효율과 능률을 중시한 차갑고 크고 시끄러운 공간이 대다수다. 딱딱하게 각이 진 박스형 건물인 데다 밖에서 안을 잘 들여다보기 어렵게 폐쇄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대신 밤늦은 시간까지 내부를 환히 밝히는 환한 불빛만 밖으로 흘러나올 때가 많다. 시끄러운 기계음과 기름 냄새나 화학약품 냄새도 거부감을 일으키게 만드는 요소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에이치케이(HK) 도약관으로 가는 길에 만난 공장 대다수가 그러했다. 소음이나 악취까진 아니더라도 무미건조함이 잔뜩 묻어나는 폐쇄된 박스형 건물이 안겨주는 시각적 피로감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곡선도로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위치한 HK도약관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형광등 100개가 빛을 발하는 아우라’가 뭔지를 실감했다. 각진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였지만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쌓아놓은 선물상자를 볼 때처럼 온기와 설렘이 느껴졌다. 1층 보다 2층이 옆으로 더 길고, 3층 위의 4층이 다시 왼편으로 삐죽 뻗어 나왔다.
크기와 길이가 제각각인 선물상자를 기묘하게 쌓아 올려 묘한 긴장감을 안겨줬다.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했다. 그제야 건물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면부에 빼곡히 들어선 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 폐쇄적인 다른 공장과 달리 외부를 향해 열려 있고 소통하려 한다는 느낌이 흘러나왔다.
HK(회장 계명재)는 레이저 공작기계 제조업체로 매출 600억 원, 직원 120명의 중소기업이다. 1992년 인천 남동공단에서 시작해 2001년 경기 화성의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원래는 도약관 뒤편 언덕 위의 공장만 있었고 도약관이 세워진 언덕 중턱에는 운동장이 있었다. 그러다 사업 확장으로 공장을 확충할 필요성이 생기자 운동장 자리에 신공장과 기술연구소를 함께 세운 것이다.
임재용 OCA 대표는 “현장을 둘러본 뒤 기계 중심이 아니라 자연 친화적이면서 인간친화적인 공장을 짓자는 구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건축지 맞은편으로 게으른 황소가 등 비비기 안성맞춤인 야트막한 언덕과 꽤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자연친화는 유리창을 통해 그 탁 트인 풍광을 건축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에서 시작됐다. 또 3층의 전면 절반을 테라스(‘바람정원’)로 꾸미고 다시 4층의 후면은 목조바닥을 깐 파티 공간(‘하늘정원’)을 조성했다. 여기에 다시 건물 중간 2곳에 중정(中庭)을 가미해 주변 자연과 공명효과를 확장했다.
언덕 모양을 살려서 1, 2층은 넓고 3, 4층은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구조로 지은 것도 그런 자연친화 건축의 일환이었다. 경사면을 따라 각 층이 지면과 연결되도록 했다. 신공장이 들어선 3층은 언덕배기 위에 위치한 구공장과 이어진다. 옆으로 돌출된 4층엔 직원을 위한 피트니스센터와 풋살 경기장이 있다. 주로 축구장으로 활용된 ‘사라진 운동장’을 대체하기 위한 배려였다.
이런 인간적 배려는 건축 도처에 스며있다. 웬만한 경차 크기의 레이저 공작기계를 조립하는 3층 공장은 기계설비와 조립라인 유지를 위해 냉난방을 할 수 없다. 기계를 위해 인간이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겨울엔 햇빛이 많이 들 수 있도록 남측 벽면 전체에 채광창을 설치했고 여름엔 뜨거운 공기를 모아 4층 ‘하늘정원’으로 배출하는 통풍창이 마련됐다. 인간 중심의 온도 조절과 공기 순환이 이뤄질 수 있게 한 것이다.
건물 전면에 우뚝 세운 엘리베이터 타워를 통해 층간 이동이 가능하도록 한 동시에 그 타워에 대형철판 위에 레이저로 새긴 회사 로고(HK)를 설치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건물 3층 높이에 위치한 구공장 옆 기숙사에서 4층 운동공간까지 곧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통로를 별도로 설치했다. 구내식당과 대회의실이 설치된 1층 복도는 일부러 직선이 아닌 중간에 살짝 휘는 곡선 구조로 했고, 그에 맞춰 천장의 형광등 역시 삐뚤빼뚤하게 단 것 역시 인간미 넘치는 발상의 산물이다.
1층 식당을 지나 중정을 건너가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춘 직원용 카페가 등장하고 외부 손님에게 회사 연혁과 주요 제품을 소개하는 트레이닝센터가 나온다. 일반 공장이라면 엄두도 못 낼 고급스러운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다른 공장과 달리 매 층마다 구조와 구성이 판이하다. 그래서 층이 바뀌면 전혀 다른 건축공간에 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기에도 비밀이 하나 숨어있다. HK 도약관을 측면에서 바라보면 1, 2층의 전면과 그 후면이 살짝 분리돼 있다. 전면의 노출 콘크리트가 거칠면서 가로로 긴 송판 무늬인 반면, 후면은 반질반질하면서 세로가 더 긴 직사각형 형태다. 전자가 사무공간 회의실 식당이 있는 인간 중심의 공간이라면 후자는 공장과 실험실로 구성된 기계 중심의 공간이다.
임 대표는 동선 중심의 공간이란 점에서 공장(팩토리)과 박물관(뮤지엄)을 결합한 ‘팩토리엄’과 테라스가 딸린 사무실(오피스)이란 뜻의 ‘테라피스’ 같은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창안해왔다. “HK 도약관은 근대적 효율성의 공간인 공장을 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어준 팩토리엄과 일터와 자연을 결합한 테라피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건축 작업입니다. 공장 역시 기계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임을 환기할 수 있어 더욱 뜻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