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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와 ‘신성’의 십자각

서울 가회동 성당

by 펭소아

● 장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57

● 준공 2013년 11월

● 설계 우대성(건축사무소 오퍼스)

● 수상 201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

2014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과 시민공감건축상

2014년 대한민국한옥공모전 올해의 한옥상



사진1_메인 후보-한옥과 어우러진 가회동 성당 ⓒ포스트픽.jpg 친교의 수평적 공간인 한옥 사랑채와 신성의 수직적 공간인 성당이 어우러져 십자각을 형상화한 가회동 성당. ⓒ포스트픽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1막과 2막 서두를 장식하는 노래 ‘대성당들의 시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노트르담을 비롯한 중세의 대성당은 별에 닿기를 원했던 인간의 역사를 유리와 돌에 새긴 것이라고. 사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기 발명 이전 중세의 대성당은 ‘돌에 새겨진 백과사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종교의 차원을 뛰어넘어 예술과 과학의 총화였다. 그리고 근대 이후 그 성당들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서구적 풍경의 핵심 요소가 됐다.


2017년 1월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의 결혼식장으로 화제에 오른 가회동 성당은 성당에 대한 이런 통념에 도전한다. 양편으로 한옥이 즐비한 북촌길 한쪽에 위치하지만 사실 밖에서만 보면 성당임을 알아채기 힘들다. 성당이나 교회당 하면 떠오르는 십자가도 금방 눈에 띄질 않는다. 길가를 지나치는 사람들 첫눈에 띄는 건물은 기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단아한 기와집이다. 외부 손님을 맞는 사랑채다. 북촌 하면 떠오르는 한옥을 건물 전면에 배치해 이곳을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품어준다.



스밈의 미학을 살린 화이부동의 공간




사진3_수평적 친교의 공간인 사랑채 한옥과 안마당. ⓒ포스트픽.jpg 수평적 친교의 공간인 사랑채 한옥과 안마당. ⓒ포스트픽


오르막길로 이뤄진 성당 정문을 거쳐 그 사랑채 안마당에 들어서야 비로소 성당의 진면목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 꼭대기에 작은 십자가를 단 사제관과 그 오른편으로 길게 늘어선 성전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단층으로 구성된 목조 한옥 공간이 ㄴ자 형태, 지상 3층의 석조 양옥이 ㄱ자 형태를 이룬다. 그래서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를 이룬다.


성당의 전경(前景)이 나무로 이뤄진 전통적이고 수평적인 친교(親交)의 공간이라면 후경(後景)은 돌로 이뤄진 현대적이고 수직적인 신성(神聖)의 공간이다. 그렇다고 둘이 딱 부러지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돌바닥을 깐 안마당에서 현대적 신성의 공간에 들어서려면 22단의 돌계단(성지마당)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반대로 전통적 친교의 공간에 들어서려면 섬돌 하나 위로 올라서면 된다. 그렇게 안마당이 태극이 되어 휘돌면서 전통과 현대, 친교와 신성이 조화를 이루되 동일하지는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이룬다.


이는 성전 옥상에 나무 바닥을 깐 ‘하늘마당’에서 다시 확인된다. 수직적 신성의 공간에서 다시 수평적 한옥의 숲이 회오리치는 풍광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늘마당에서 마나게 되는 십자가는 아담하다. 북촌 한옥마을의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겸손하게 세워졌다. 1958년 독일에서 주조된 동종은 맑고 고운 소리를 자랑한다. 하지만 옛 성당건물이 그 진동을 감당하기 어렵다 하여 일부러 타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당이 새로 지어져 안전문제가 해소됐다. 그럼에도 '울리지 않는 종'의 전통은 지금도 면면히 지켜지고 있다. 북촌 8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주변 민원으로 이곳에서 결혼하는 신랑 신부 등 제한된 사람에게만 공개되는 점은 못내 아쉽다.


이런 스밈의 미학은 건물 도처에서 발견된다. 돌계단과 만나는 성전 외부와 성전 내부는 한옥과 공명하는 목재로 지어졌다. 한옥 돌담의 벽돌구조는 성전과 사제관의 전체 벽면 구조에 은은히 반영됐다. 성전 출입문 역시 한옥 대문 구조를 본떴다. 한옥 사랑채 한 구석을 지키고 있는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 신부의 동상은 갓과 도포 차림이다.


사진5_가회동 성당 성전 내부와 한옥 대문 형태의 성전 출입문. 성전은 전체적으로 목조 구조지만 자연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환한 석판 위에 십자가 예수상을 설치했고 출입문은 한옥과 조화를 꾀했다. ⓒ포스트픽.jpg 한옥 대문 형태의 성전 출입문. 성전은 목조 구조지만 십자가 예수상이 위치한 곳만 자연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환한 석판을 써서 후광효과를 발생시켰다. ⓒ포스트픽



가회동 地氣에 충실한 성당



사진4_가회동 성당 꼭대기의 십자가와 동종. 십자가는 북촌 한옥마을 풍관에 스며들기 위해 아담하게 세워졌다. 1958년 독일에서 주조된 동종은 맑고 고운 소리를 지녔지만 옛 성당건물이 그 진동을 감당하기 어렵다 하여 타종하지 않는 전통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다. ⓒ포스트픽.jpg 성전 옥상인 하늘마당에서 만나게 되는 아담한 십자가와 울리지 않는 동종. ⓒ포스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중 분위기(atmosphere)나 그 장소가 불러일으키는 무드(mood)를 강조한 이들은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1998년 수상자인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아닐까.


그는 “어떤 장소에서 아름답고 유용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그 장소의 정수를 파악해야 한다”면서 그 정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기후, 분위기 그리고 지기(地氣·genius loci)를 언급했다. 라틴어 표현인 genius loci는 그 땅을 지키는 수호신(地神), 곧 우리 민속신앙의 터주에 해당한다. 그만큼 건축 부지의 정수를 꿰뚫고 그와 조화를 이루는 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북촌은 한국에서 첫 미사가 이뤄진 공간이다. 1794년 조선에 밀입국한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그해 부활절(4월 5일)에 역관 최인길(마티아)의 집에서 조선인 신도를 모아놓고 최초의 정식 미사를 봉헌했다. 이듬해 주문모 신부 수배령이 내려지자 신부 복장을 하고 대신 잡혀간 최인길 등 3명이 순교하는 을묘박해가 발생한다. 그 6년 뒤 신유박해 때 주문모 신부와 그를 숨겨주며 평신도 회장으로 활약했던 강완숙(골롬비) 등 7명이 순교한다. 북촌 일대의 이들 순교자 10명은 2015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한 124위의 ‘복자’(福者·성인 다음 반열에 오르는 ‘공경할 만한 신도’를 일컫는 가톨릭 용어)에 포함됐다.


사진7_가회동 성당의 역사 소개하는 1층 전시관. ⓒ포스트픽.jpg 가회동 성당의 역사 를소개하는 1층 전시관. ⓒ포스트픽



이로 인해 가회동 성당은 가톨릭 성지순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에 맞춰 신축된 성당은 신도, 순례객, 관광객이라는 3차원의 방문객을 배려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오퍼스의 우대성 대표의 말이다.


“작은 필지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인 북촌에서 부지가 1100평이나 되는 성당은 자칫 주변을 압도할 수 있기에 그 존재를 너무 드러내선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변과 어울리면서도 순례객과 관광객 같은 외부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사랑채 공간을 앞세우고 신도들의 공간을 뒤로 돌렸습니다. 이를 위해 성당 운영에 필요한 각종 부대시설을 지하화하느라 화강암 암반을 깎느라 상당한 출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가회동 성당은 그런 배려와 겸손의 실천을 통해 ‘나무와 돌에 새겨진 역사책’이 됐다. 동시에 은근과 끈기의 신앙이 스며든 한국적 풍경을 이뤄냈다. 그런 의미에서 렌조 피아노의 사랑을 담뿍 받을 한국적 성당 건축이 아닐까 하는 발칙한 상상의 나래도 펼쳐본다.



사진5-2_ 사진5_한옥 대문 형식의 선전 출입문을 닫았을 때. ⓒ포스트픽.jpg 한옥 대문 형식의 성전 출입문을 닫았을 때. ⓒ포스트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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