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의 디어스 타워
● 장소 경기 안양시 동안구 동편로 54-11
● 준공 2018년 10월
● 설계 HNSA건축(한만원, 최경숙)
● 수상 2019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
정말 부러웠다. 이런 사옥에서 근무할 직원들이.
페인트업체 ㈜세다의 신사옥으로 경기 안양시에 지어진 ‘디어스 타워(Deer’s Tower)’는 대지부터 남다르다. 지상 10층, 지하 2층인 타워의 옥상에 서면 오른편부터 왼편으로 관악산, 수리산, 백운산, 청계산이 한눈에 주르르 들어온다.
게다가 관악산 줄기에 위치한 사옥 터는 ‘동편공원’에 3면이 둘러싸여 있다. 정면으로는 안양의 새로운 명물이 된 ‘동편마을 카페거리’가 내려다보인다. 1층에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둔 5층짜리 빌라밀집촌이다. 한마디로 수도권 유명 산들을 병풍으로 삼아 숲 속에 지은 친자연적 ‘그린 오피스빌딩’이란 소리다. 그래서일까, 영어로 된 사옥명도 사슴의 탑이다.
사슴의 탑은 정면 한복판에 '공중정원(아트리움)'을 품고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3층부터 10층까지, 2층마다 하나씩 모두 4개나 된다.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온실이나 다름없는 이 4개 테라스는 저마다 다른 정원수로 조성돼 차별화된 공간 체험을 안겨준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 빌딩 안에서 상상하기 힘든 녹색의 향연을 선물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좌우로 조성된 사무공간에 앉아있으면 겹겹의 창을 통해 공중정원과 주변 숲이 겹쳐지면서 시원한 공간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전통 한옥에서 문과 유리창을 활용해 외부 경치를 실내로 끌고 들어오는 차경(借景)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공중정원' 하면 디어스 타워보다 4개월 앞선 2018년 6월 준공된 아모레퍼시픽그룹 용산 신사옥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22층 중에서 5층, 11층, 17층의 뻥 뚫린 공간을 가득 채운 ‘루프 가든(공중정원)’의 위용. 그렇지만 그건 위풍당당한 대기업 사옥에서나 가능하겠거니 했는데 10층짜리 중소기업 사옥에서도 정겹게 구현되는 것을 목도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라는 이름값과 한국의 달항아리 백자에서 영감을 얻은 ‘보이드 공간 건축’ 그리고 거대한 덩치 때문에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더 화제가 됐다. 하지만 두 건축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비교해 본 저자로선 한국적 풍미를 살린 친환경적 '그린 오피스 빌딩'이란 점에선 디어스 타워에 훨씬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디어스 타워에는 이런 아트리움 말고도 외부 경치를 끌어들이는 2개의 건축적 장치가 더해졌다. 각층의 3면을 둘러싼 발코니와 그 발코니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테라스다.
먼저 층마다 사무실 공간 3면을 둘러싼 발코니를 만날 수 있다. 유리창 앞에 설치된 이 발코니는 2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는 창만 열고 나가면 바로 외기(外氣)를 접할 수 있게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아래층의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한옥의 처마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발코니 폭이 좁아 스며드는 나머지 햇빛은 발코니 난간 사이로 틈틈이 설치한 알루미늄 수직 루버(일렬로 설치된 격자형 차광판)를 통해 다시 걸러낸다. 얼핏 보면 아모레퍼시픽 그룹 신사옥 전체를 덮다시피 해 ‘커튼 월’ 효과를 불러온 알루미늄 수직 루버와 비슷하다.
차이점은 디어스 타워에선 최소한으로만 사용됐다는 점이다. 건물 정면의 공중정원 앞 발코니에는 설치되지 않았다. 사무 공간 앞 발코니에도 계절별, 시간대별 태양 궤적과 일조량을 계산해 꼭 필요한 곳에만 설치됐다. 그것도 햇빛의 입사각을 감안해 유선형의 루버를 살짝 비틀어 설치함으로써 그 숫자를 다시 줄였다. 그렇게 설치된 디어스 타워의 루버는 멀리서 보면 서양 신전에 설치된 열주(列柱)를 연상케 한다.
디어스 타워의 진짜 ‘신의 한 수’는 테라스에 있다. 각 층마다 직사각형의 사무 공간 중 일부를 떼 내어 공원의 숲을 건축 내부로 끌고 들어오는 테라스를 조성했다. 그것도 각 층마다 그 위치를 달리하면서 1~3개의 테라스를 만들어 저마다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고층부에선 탁 트인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면 저층부에선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오붓함을 즐길 수 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1층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불과 몇 걸음에서 수십 걸음만 걸어 발코니 또는 테라스로만 나서도 공원 한복판에 있는 듯한 기분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설계한 한만원 HNSA 대표는 “한국과 같은 위도에 스페인 남부, 튀니지 북단, 시칠리아, 그리스가 위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햇빛 차단을 위한 한옥의 처마가 왜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면서 온통 유리로 덮인 글라스타워의 대안으로서 디어스 타워를 구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옥의 처마를 대신해 발코니와 알루미늄 루버를 설치했고, 툇마루의 효과를 염두에 두고 각 층마다 테라스를 만들었으며 차경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아트리움을 건축 정면에 뒀다는 것이다.
디어스 타워에는 ‘색을 다루는 회사’로서 자부심을 담은 건축적 장치도 숨어 있다. 지하 2층까지 포함해 전체 12층에 맞춰 열두 달의 탄생석 빛깔을 층마다 차별적으로 적용했다. 또 주역의 8궤를 연상케 하는 디어스 타워의 입면 형상과 이를 좌우로 눕혀가며 변화를 준 변용 형상을 유리창과 간판 등 건축 곳곳에 암호처럼 배치해 통일성을 부여했다. 그만큼 섬세한 디테일까지 살아 있는 세련된 오피스빌딩이기도 하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