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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Nov 25. 2023

가을 일곱 걸음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바람마저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다.

그 와중에 하늘은 더없이 푸르르다.


바닥에 떨어진 노랗게 물들다만 은행잎이 추운 날씨 때문인지 살짝 얼어 있다.

그러고 보니 단풍이 들지 않은 것이 단풍나무뿐이 아니었다.

은행잎도 예년의 노란 은행잎이 아니라 초록을 벗어내지 못한 은행잎이 대부분이다.


이런 가을이 또 있었을까?

지금까지는 그저 관심 없이 보냈던 계절들이라 올해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지, 아니면 이런 가을들이 있기도 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가슴 설레게 찬란하고 황홀했던 가을 풍경이 매년 가을이 되면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이 아니었나 보다.


<며칠전 가을 풍경>


나만 올가을이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역시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한 기자가 국립수목원의 연구원에게 이유를 묻고 기사를 작성해 주었다.


올해의 단풍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던 건 바로 늦더위가 원인이었다.

단풍이 예쁘게 들기 위해서는 일교차가 크고 최저 기온이 5도 이하여야 하는데, 올해는 늦게까지 무더위가 지속되었고 일교차가 큰 날씨를 충족하지 못해서 색소 발현이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낮에는 더운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짧았던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아직 초록인 이 단풍이 물들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올가을은 저물어 가는 것이구나!!


앞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아름다운 단풍 보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꼭 그렇지는 않고, 단풍을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이 다양하기 때문에 변화를 지켜보며 관찰하고 연구해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기온은 점점 올라갈 테고, 그렇다면 이러다 단풍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2023년의 가을은 단풍 들지 않은 가을로 마무리를 하게 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씨가 영하로 떨어져 이제 가을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오늘, 그동안 물들지 못해 초록 일색이던 단풍나무가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 뒤 늦게 찾아와 준 오늘 만난 단풍 >


늘 가던 산책로가 심심해져서 며칠 동안 한 번도 안 가 본 새로운 산책로를 다녔었다.

그 산책로는 죽 늘어선 버드나무와 물가를  따라가는 산책로여서 풍성한 갈대와 물에서 노는 오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이라야 겨우 3,4일에 불과했는데, 오늘 다시 찾은 산책로에서 초록색으로 말라가던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는 장면을 본 것이었다.


비록 작년처럼 전체가 곱게 물든 건 아니었지만, 중간중간 그대로 말라 버린 나뭇잎들이 섞여있긴 했지만, 단풍 고유의 붉은색으로 아름답게 찬란하게 물들어 있었다!!


이 고은 단풍을 보는데 왜 마음이 울컥한 걸까?

늦었지만, 하필 영하의 바람 부는 날씨에 온통 붉게 물들어준 단풍나무가 너무 고마웠다.

포기하지 않고 물들어 주어서, 겨울이 오기 전에 기어코 찾아와 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수고했다. 고생했어....


올가을 역시 아름답고, 찬란하고, 황홀하게 물든 단풍을 만날 수 있어 나의 가을은 이제야 완벽해졌다.

안녕! 2023년의 가을이여~~

뒤늦게 물든 단풍나무에게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피워내라는 무언의 용기와 희망과 그리고 위로를 함께 받은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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