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 아이올로스의 심술

7월 9일

by 감성토끼

평택이란 낯설고 물선 도시에 산 지 햇수로 6년 차!

2017년 2월에 이사를 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그저 신도시에 자리한 문구점 하나만 찾아 어찌어찌 이 구석진 곳으로 오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마주하고, 뒤편으로는 상가주택들이 늘어서 있고, 한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결혼 전까지 살았다.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도 서울에서 했었다. 그러면서 역시 서울 남자를 만나 엉뚱하게도 경기도 안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안산은 나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고, 딸에게는 고향이 된 셈이다.

안산에는 많은 추억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딸아이가 나고 자라고, 처음 문구점을 시작한 곳....

그리고 경력단절 후 시작된 나의 직장 생활들, 그곳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어쩌면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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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지금은 평택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평택은 내게 제3의 고향인 셈이다.

가게가 있는 이 소사벌은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어째서인지 늘 바람이 분다.


그것도 돌풍 같은 바람이 자주 분다. 가게가 코너 쪽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심술 때문인 걸까? 심술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몇 가지 사건이 있다.


가게 바깥쪽 출입문 오른쪽으로 진열대가 있고, 왼쪽으로는 뽑기 통 3개와 세워놓는 진열대 2개가 자리 잡고 있다.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 날, 갑자기 바깥 진열대에 진열해 놓았던 물건들이 바람에 날려 날아가 버렸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진열대 위쪽 플라스틱 통이 뒤집어져 깨져 버렸고, 그 안에 담겨있던 물건들까지 1, 2m를 날아가 주어 와야 했다.

축구공만 한 탱탱볼들은 더 신나게 날아가 5개 중 건너편 차 밑에서 2개를 찾았고, 다른 두 개는 지나가던 분들이 주어다 주셨다. 그런데, 탱탱볼 하나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그냥 포기하려다 CCTV가 떠올라 혹시나 하고 CCTV를 돌려보았다.


CCTV를 돌려보던 중 탱탱볼 하나가 휙 날아가는 게 포착되었다. 그 방향으로 가 보니 가게 건너편 재활용품 버리는 그물망 안에 탱탱볼이 누가 버린 물건인 양 쏙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을 봤어도 지나쳐버렸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탱탱볼 5개는 모두 무사히 회수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바람이 불면 살짝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그날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비가 내리면서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마침 서울에 사는 딸이 평택에 내려왔다가 엄마를 도와준다고 가게에 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등교해서 조용한 가게 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 진열대가 죽 밀리면서 돌풍에 다시 한번 플라스틱 통이 물건들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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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나는 얼른 바깥으로 나가서 뺨을 때리는 비를 맞으며 흩어진 실내화를 줍고, 수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돌풍이 불더니 유리로 된 출입문이 거세게 밀리면서, 마침 거기 서있던 딸의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하고 말았다. 딸은 악~ 소리를 지르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코를 부딪혀 코피가 줄줄 나는 거였다. 휴지로 코를 막게 하고, 많이 다친 건 아닌지 살피랴, 물건들 더 날아가기 전에 주어오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병원에 가보니 다행히 코 뼈가 부러진 건 아니었고, 코가 부은 정도에서 그쳐 너무 다행이었다.


그 이후 밖에 진열대가 움직이지 않게 벽돌을 주워다 안에 넣어두고, 플라스틱통 안에도 벽돌을 종이로 싸서 넣어두었다.

그리고 세워 두어야 하는 진열대의 물건들은 고무줄로 한번 길게 묶어 두었다. 바람이 불어도 이런 불상사들이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했다. 그래선지 다행히 바람이 불어도 그 이후 무사히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경도 안 쓰던 곳에서 일이 터졌다.

바람에 어닝이 세차게 흔들리는 걸 보니 또 그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살짝 불안함이 엄습해 오는 가운데, 그래도 커피를 마시면서 PC로 글을 쓰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CCTV로 바깥 동향을 틈틈이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어닝이 세차게 흔들리고, 가게 통창 밖으로 보이는 나뭇잎들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출입문 한쪽이 바람에 밀려 갑자기 휙~ 안쪽으로 열리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서 출입문으로 달려가 문을 잡았다.

한순간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새.

문이 닫히긴 하는데, 양쪽 출입문이 맞물리질 않고, 약 5cm 정도의 틈이 벌어졌다.


이렇게 해서 한쪽 출입문 수리 비용이 15만 원이 들었다. 15만 원짜리 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바람만 불면 괜히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초속이 얼마나 되는지 신경 써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아예 주 출입문을 잠그고, 옆쪽 작은 출입문만 열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바람 불때마다 이렇게 불안해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너무 피곤했다.

<아이올로스에게 바람을 부탁하는 헤라>

지금은 어느 정도 단련이 되긴 했지만, 자연에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매번 불안해할 수도 없기에 아예 그냥 바람한테 맡겨 놓기로 마음을 바꿨다.

태풍도 아닌 그저 초속 6~7m/s의 바람이 뭘 더 어떻게 훼방을 놓을 수 있겠는가!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난 게 아닐까? 설마 지금까지의 상황보다 더한 상황이 펼쳐질 일이야 없지 않겠는가!


바람이야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뿐일 텐데....

바람아, 불어라~ 네 마음대로 훨훨 불려무나~~

단, 사람만 다치지 않게 해 주렴~~

아이올로스에게 이제 심술은 그만 부리라는 의미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https://youtu.be/GG6ZVcnNcRM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바람의 노래-


<블로그 댓글 중>


- 진짜 위험 하셨네요. 따님 다치셔서 많이 놀라셨겠어요.

강풍일 불때마다 걱정되실 텐데 멋진 노래로 승화시켜 주시는 모습이 참 멋지세요.

부디 강풍이 문구점을 피해 가기를 바랍니다.

- 헉 바람때문에 완전 놀라셨겠어요ㅠㅠㅠ

세상에나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어찌할 수 없다며 마음을 편히 가지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배웁니다ㅎㅎ

그리고 전 바람의 노래 참 좋아해요

조용필 선생님이 부른 원곡을 먼저 알고 있었는데 소향님 버전도 참 좋네용ㅎㅎ

- 낯선 곳에서 바람이 날리는 것에 조금씩 적응해 가시는 모습을 함께 담아 더 몰입하며 읽었어요.

낯선 지역에서 저도 결혼해서 살때 쉽지 않더라고요.

마치 바람이 불어와 가만히 놔두면 될 것을 헤집어놓듯이요~~

그래 제 3의 고향으로 여기며 사시는 모습이 멋지세요.

소향의 노래 들으며 제 그냥 마음이 잔잔해지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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