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엄청 난 인기를 끄는 포켓몬빵 못지않게 포켓몬 카드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문구점에서 받을 수 있는 양이 많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이 1인 1팩, 수량이 많은 날은 1인 2팩 한정으로 팔 수밖에 없다.
어린이날을 맞아 우리 문구점을 찾아 준 아이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배틀리전>이라는 카드 1통을 몰래 남겨 놓았다가 나름 서프라이즈 판매를 시작했다.
1팩에 2,000원! 딱 20팩이 들어 있는 카드 1통!
스무 명의 아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겠다는 설렘이 있었다.
첫 손님은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였다. 아이는 카드를 보더니 흥분을 했고, 여러 팩을 집어 들다 "1인 1팩"이라고 쓰여 있는 글을 보고 멈칫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엄마, 아빠가 1인 1팩이니 우리도 1팩씩 해서 세 팩을 사겠다는 거였다.
나는 어린이날이니 아이들에게 양보 좀 해 달라고 말하면서, 딱 1통밖에 없어서 20명의 아이들에게 밖에 판매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힐 기미가 없어 보였고, 결국 2팩으로 합의를 보고 카드로 계산을 마쳤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단순한 나의 호의가 예상치 않은 복병을 만나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 첫 손님이 이러니 이 카드 다 팔기까지 너무 피곤해지는 거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다행히 두 번째 손님은 아이들이었다.
어린이날이라 기분 좋은 아이가 1인 1팩이라고 하니 친구 1팩, 자기 1팩 해서 2팩을 현금으로 계산했다. 1팩은 친구에게 통 크게 선물해주는 거였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너무 잘 사 주는 면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아이들은 카드를 들고 온 아이들이어서 1팩 2000원씩 각각 카드로 계산을 마쳤다.
다음 손님은 어린이 손님, 그다음 손님은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였지만, 다들 1인 1팩씩 즐겁게 사가셨다.
그다음 손님은 엄마와 함께 아들, 딸이 와서 3팩을 계산하셨다. 첫 손님 한테서 전의를 꺾인 나는 그냥 말없이 계산을 마쳤다. 괜히 피곤하게 카드 1팩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기 싫었다.
고학년 아이들이 몇 팩, 아빠와 온 아이가 두 팩, 아이에게 부탁받은 엄마가 와서 한 팩을 사 가셨다.
요즘 엄마들이 오죽하면 아이들에게 카드 셔틀을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분까지 계실까?
마지막 카드 1팩이 남았다. 이 카드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때 아빠와 한 아이가 들어왔다가 1팩 남은 카드를 보더니 많은 거 사야 한다며 아빠 손을 이끌고 나가버렸다.
결국 마지막 남은 카드는 커다란 팝콘 통을 들고 온 한 가족에게 팔려나갔다.
아이가 둘이었는데, 한 팩 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별 다툼 없이 형이 자신의 용돈으로 사 가지고 갔다.
이렇게 해서 야금야금 20팩의 카드는 순식간에 이런저런 손님들에게로 돌아갔다.
오늘은 어찌 됐거나 즐거운 어린이날이 아니던가!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하면 되었다.
카드가 더 많았으면 내가 이렇게 야박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한 아이가 해맑은 얼굴로 아까 좋은 카드를 뽑았다며 신나게 들어와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카드를 끼울 슬리브를 찾았다.
좋은 카드에 흠집이라도 날까 반짝이는 비닐커버를 카드에 씌워놓는 것이다.
난, 사실 카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좋은 카드를 뽑을 때마다 내게 와서 자랑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자랑할 때마다 "그거 좋은 카드야? 와~ 너무 좋겠다!!"며 한껏 리액션을 해 주곤 한다.
카드 한 장을 소중하게 슬리브에 끼워 내게 보여주면서 웃음 짓는 그 아이를 보니 지금까지 뭔가 찜찜했던 내 마음이 다 밝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카드 1팩, 딱지 한 개에 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해한다.
그 단순하고, 소박한 아이들의 마음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어린이날 단 하루 만이라도 아이들의 순박한 동심으로 하루를 살고 싶다.
<블로그 댓글 중>
- 어린이날 포켓몬 카드~~^^
부모님 카드셔틀 해야하는 ㅎㅎ
공급이 넉넉하면 누구나 편하게 구입할텐데 다소 아쉬움이 ㅠㅠ
어린이날 주는 추억입니다
- 포켓몬 빵 못지 않게 카드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군요!
저희 큰 녀석도 저학년 때에는 카드 많이 사더만 이제는 조금 컸다고 그때보다는 덜 하네요.
첫 손님한테 에너지를 너무 뺏긴 감성토끼님. 전의를 상실! 하하
- ㅎㅎ.아이들마다 다 개성들이 있어서 재밌게 읽었어요.
얘전에 학원할때 어린이날엔 꼭 선물을 해주느라 문방구에 들리곤 하던 일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