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오후 여섯시가 지나자 태양이 가게 건너편 아파트에 반사되어 눈부시고, 가게 안에 빛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어닝 끝이 펄럭이며 바람을 반겨 주고, 더위에 지쳐 있던 짙은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땀을 식힌다.
평소에 비해 손님으로 복작거렸던 날, 이제서야 한숨 돌려 본다.
오늘은 유치원 선물들을 포장하느라 모처럼 바쁜 하루였다. 오랜만에 대기줄까지 생겨서 마음이 더욱 바빴었다. 포장지를 모양에 맞춰 자르고, 물건에 최대한 압착해 쫙 펴서 테이프로 붙이고 양옆을 마무리하면 하나의 예쁜 선물상자가 탄생한다. 포장하면서, 오는 손님들 계산까지 해야 하니 손도 마음도 같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드디어,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가게 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 하는 이 시간, 이 여유가 너무 좋다.
커피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는다.
마음속에 뭔가 몽글몽글한 느낌이 번져 나간다.
방학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쁨이었다.
가게를 찾아주신 엄마들께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하고 조용히 되뇌어 본다.
저물어가는 나른한 햇빛이 가게 바닥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정돈된 가게 안,
나와 라디오만이 존재하는 이 공간....
지금의 내 기분을 기록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가 있고, 먹다 남은 커피향이 은은히 감도는 지금....
감사로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지금! 이 느낌, 뭔가 충만한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라디오에서 마침 '별빛이 내린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샤랴랄라라랄라 샤랴랄라라랄라
샤랴랄라라랄라 샤랴랄라라랄라
쏟아져내린 도시의 밤으로
쏟아져내린 눈물 그 위로
쏟아져내린 나의 마음이
이렇게나 자라버렸고
쏟아져내린 별빛 사이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위로
쏟아져내린 나의 마음이
이렇게나 자라버렸고
샤랴랄라라랄라 샤랴랄라라랄라
내 마음에, 이 15평 공간 안에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이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 어느새 가게 통창 밖으로 어둑어둑한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다.
이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던가!
개와 늑대의 시간.
불어로 L'heure entre chien et loup,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 질 녘,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나타낸다.
해 질 녘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표현에서 유래했다.
다른 표현으로는 황혼이라고도 한다.
해가 지고 어스름한 이 시간.
사람에게 있어 몇 살부터가 개늑시의 시간인 것일까?
황혼은 몇 살부터 인 걸까?
내 인생의 황혼이 다가오면 난 이 시간을 얼마나 붉게 아름답게 물들여 볼 수 있을까.
내 인생의 개늑시는 어떤 색채와 형상으로 빛나게 될까?
60 가까운(아직은 만으로 50대이다, 몇 개월 남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되어 보니, 나를 더욱 돌아보게 만든다. 어렸을 적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 나이는 뭔가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제적인 면부터 내면적인 것까지 어느 하나 이루어 놓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결과이니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지만, 얼마 남았을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내 생각대로 살아갈 것이다.
내 인생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뒤늦게 찾은 나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아직은 황혼까지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내 황혼의 색채를 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무채색에 가까운 삶이었다면, 바로 지금부터 아름답고, 따스하고, 포근하면서 은은하게 나만의 물감으로, 나만의 색으로, 오직 나만의 느낌으로 채워 나가면 되지 않을까?
앞의 시간들이 다소 암울한 색이었다고 해도, 마지막을 찬란하게, 나만의 꿈으로 채울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찬란한 꿈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블로그 댓글 중>
- 바쁨이 지나가고 만난 한가한 시간의 커피향이 느껴져요.
ㅋㅋㅋ 늑대와 개의 시간대에 있는 우리들의 나이를 생각해봅니다~~^^
- 감성토끼님의 삶이 아름다운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고 꾸며지길 응원할게요
오늘 올리신 편안하고 차분한 글...오늘 날씨와 찰떡이예요^^
- 요즘은 나이와는 무관하게 자기삶을 무지개빛으로 물들이며 사시는 분들이 참 많잖아요.
그런분들이 있기에 나이가 들어도 한 번더 내게도 기회가 찾아올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감성토끼님을 통해 배우게 되네요~~^^
오늘도 수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밀물은 오리라. 그 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
꿈을 지속적으로 품는 것이 중요하다네요.
응원해요~~감성토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