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과 밸런싱, 그리고 사바 아사나
일주일에 세 번,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영하는 요가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전문 강사가 오셔서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1시간 수업을 진행한다. 수강료가 시중 학원대비 많이 저렴한데도 평일 저녁 7시에 수업이 시작하는지라 수강생은 10여명 남짓으로 많지는 않다.
표준치료를 마친 후, 4개월 전부터 마눌과 함께 등록했지만, 지난 달까지는 주 한두번 참여했을 뿐이었다. 반백수 신세라도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다보면 7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소화가 안된채 수업에 참여하면 트림이나 속 부대낌, 방귀를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수업 30여분이 지나면 조용히 빠져나와 화장실에 들렀다 수업실 밖 헬스장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곤 했다.
게으름 피운다는 마눌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주변 수강생에게 민폐를 끼칠수 없다는 나름의 명분으로 몸과 마음이 편할 때만 제한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왔다.
그러다 지난달 요가 전도사 선배를 만나 연극을 보고 저녁을 먹다가 조언을 들었다.
형은 요가 경력 이십여년의 고수다.
내가 5년전 요가에 입문한 것도 형의 권유 덕분이었다. 형은 두툼한 요가서적 두어권을 선물하며 3개월치 학원비를 보내왔다. 그만큼 요가에 진심이었다.
사명감을 가진 것처럼 전도하는 형의 진심에 감화되어 뇌종양 발병 전까지 마눌과 함께 3년 정도 요가를 수련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 형은 나에게 '억지로 꾸역꾸역' 수업 시간을 채우라고 조언했다. 방귀가 마려우면 참지 말라며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형도 그런 시절을 거쳐왔다고 했다.
요가는 1시간 수업이 빌드업과 밸런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0분 참여하고 20분 빠지면 수련의 효과가 40분이 아니라 10분의 효과만 남는다며 수업시간을 꽉 채울 것을 당부했다. 중간에 빠지면 단계적인 빌드업 효과가 없고, 기대했던 밸런싱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형과의 만남이후 조언대로 꾸역꾸역 수업 시간을 채우고 있다.
가끔 수업시간에 실수할 때도 있지만 마음 편하게 생각하려한다.
선생님께는 사전에 양해 말씀을 드렸고 지금은 동료 수강생 배려를 고민하기보다 내 몸 회복을 우선시 하려한다.
측두엽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몸의 왼편 팔다리가 시리고 저리다.
왼 발가락이 저려 쫙 펴지지 않다보니 몸에 힘을 싣기도 균형 잡기도 어려움이 있다.
활동량이 예전 같지않아 오십견이 온 탓에 상체의 움직임도 둔하다.
여기저기 몸이 불편해 요가동작은 시늉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키려 한다.
뇌의 가소성을 믿는 것처럼
몸의 가소성도 믿으려 한다.
몸은 안쓰면 퇴화하고, 움직일수록 할동의 지평은 넓어진다.
다시 요가를 시작하며
요가의 철학을 생각한다.
요가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마음까지 다스리는 운동이다.
평소 안하는 동작을 억지로 하면서 안쓰던 근육을 쓴다. 안쓰는 근육을 사용하며 몸의 조화를 찾는다.
호흡과 함께 근육을 이완하고 수축한다. 구부리고 펴고 늘리고 조이는 동작을 반복한다.
힘든 동작이지만 버티며 참고 견딘다.
그 과정은 단계별로 빌드업되며 한걸음씩 나아간다. 그래야 몸에 무리가 없고 마지막에 부드러운 동작이 가능해진다.
또한, 수축 후에는 이완하고 왼쪽 다음에는 오른쪽 이런 식으로 움직임의 균형과 조화를 맞춘다.
이것이 형이 언급한 빌드업과 밸런싱이었다.
나는 여기에 요가 철학으로 "사바 아사나'를 추가하고 싶다.
사바는 산스크리트어로 시체를 뜻한다. 사바 아사나는 요가수업 마무리에 행하는 이른바 '죽은 자의 자세'다.
1시간 수업후 갖는 5분의 휴식 시간, 선생님은 불을 끄고 조용한 음악을 튼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이완하는 시간이다. 1시간의 부지런한 활동이 있었기에 5분이라도 달콤한 휴식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