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논리 대신 공존과 상생으로
이른 아침, 빗소리에 잠이 깼다.
라시도같은 높은 음자리는 아니라도 미파솔 정도의 중간 음계가 땅에 닿는 빗소리는 오랫만에 듣는 시골 정취였다.
눈을 떠 주변을 돌아보니 익숙한 침대가 아니고, 맨 바닥에 웅크려 자고 있다. 그래도 마음은 평안하다. 고향의 품이었다.
오늘 아침 엄마 생신상을 차리기 위해 어제 마눌이 운전해서 시골에 왔다. 나의 수호천사이자 보조 쉐프인 둘째 딸도 동행했다.
오전 11시경 출발했지만,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고 차도 막혀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엄마를 부르며 대문을 밀고 들어서도, 재차 부르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도 엄마가 기척이 없다.
평소에는 이런 법이 없었다.
아들 차가 도착하기 두어 시간 전부터 동네 앞에서 또래 아줌마들과 얘기나누거나 채소를 다듬으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게 다반사였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피곤해서 한숨 잤다고 한다.
여름이 가기 전에 깨를 베느라고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죽다 살아났다며 이제는 더이상 농사 못짓겠다고 하신다. 그래도, 깨가 풍년이라 그 땅에서 닷되를 털어 이십 오만원에 팔았고, 돈을 보태 고추 오십근을 사서 아들 몫으로 열 근을 챙겨뒀다고 한다.
말끝마다 "엄마가 힘들어 오래 못 살거 같다"고 하시면서도, 너오면 먹으라고 동지죽 써놨으니 빨리 저녁먹자고 하신다.
인사를 마친 마눌과 둘째가 저녁을 차리는 사이, 누군가 현관문을 밀고 들어선다. 옆 집 누나다. 구순을 넘긴 아버지 드시라고 흑산 홍어를 샀는데, 맛 좀 보시라고 조금 덜어왔다고 한다. 엄마는 "그 비싼 걸" 하시더니 이불을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그릇에 팥죽을 담아온다. 얼른 가서 식기 전에 먹으라고 누나를 돌려보낸 후, 엄마랑 함께 밥상에 앉았다.
동지죽 옆에 미역국도 있다. 광주사는 누나가 오전 일찍 와서 끓였다고 한다. 오후에는 일이 있다고 미역국을 끓여놓고 방앗간에 들러 죽 끓일 준비를 해두고 서둘러 갔다고 한다.
형네는 처조카 결혼식에 가서 오늘은 못오니 우리끼리 먹자고 한다.
수저를 들다가 울산사는 작은 아버지도 오셔서 선산 벌초를 갔다는 얘기를 하시길래, 전화를 드리니 성묘마치고 오랫만에 모인 친지들과 함께 술한잔 할꺼라 한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랫만에 마눌과 딸 손을 잡고 동네 밤길을 걸었다. 인적은 없고, 개짓는 소리만 크게 들린다. 별빛도 사라지고 처량한 가로등과 드물게 지나는 차량 불빛만 빛나는 호젓한 시골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예상한대로 고향땅은 도로 초입부터 현수막으로 가득했다.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반대하는 결기는 가득한데, 행정관청은 묵묵부답이라 한다. 마을 주민들의 시름은 깊은데, 방도가 마뜩찮다.
지역소외가 분명한데 자본과 외지인들은 님비즘으로 오해하고 있다. 군내 발생하는 폐기물 용량의 100배를 처리하겠다는 사업자에게 사업허가를 내준다면, 인근 시군의 폐기물까지 반입될 것은 불보듯 뻔한데도 순박한 농심은 지역 이기주의라는 오해를 살까 부담스러워 한다.
투쟁을 진행할 사람도 시간도 부족하다. 해뜨면 들로 나가 일하고, 해지면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만으로도 숨가쁘다.
자본의 논리는 이미 법과 행정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왔고, 행정은 자본의 편에 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정책과 국익을 도외시한 채 은근히 미국편에 서서 그 협정에 사인을 강요하는 정치권의 일부 풍토를 개탄하며, 친구 도불원은 "선비라면 우환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백성의 삶을 걱정하고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는 '우환의식'이 필요하다. 자본의 논리만으로는 공동체를 보듬지 못한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상생과 공존의 정신이 흐르길 바란다.
순박한 사람들이 다치지 않고 평화로운 삶터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