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

by 오오리

1990년대 중후반, 메론은 우리집에서 자주 사먹는 과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의 나는 초등학생이었어서 메론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렴풋한 기억 속에는 '이게 귀족과일이야'라며 잘라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있다.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을 더 오래 봐오셨던 할머니에게 메론은 귀족과일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은 가격이 지금과 같이 부담없는 가격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왜냐면 메론은 당시에 우리집에서 자주 사먹는 과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때의 나는 초등학생이었어서 메론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어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과일이 끊기지 않던 우리집에서 메론을 자주 먹은 기억은 없다. 아마도 저렴하지 않은 메론을 살 바에는 형제과일격인 참외가 저렴하고, 여름 대표 과일인 수박은 비싸지만 좀 더 오래 먹을 수 있으므로 가성비가 좋은 과일들을 택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기억때문인지 여전히 나에게는 메론이 쉽지 않다.


할머니는 과일을 좋아하셨다. 아마 엄마도 나도 그 영향을 받은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할머니댁에 가면 항상 과일이 있었는데, 특히 가을에는 거실의 탁자 위에 언제나 배와 사과, 그리고 단감이 올려져 있었다. 여름에는 꼭 메론을 사주시곤 했는데, 까끌까끌한 메론 껍질의 촉감이 항상 신기했다. 대부분의 과일들은 표면이 매끄러운데 이 과일은 어째 이렇게 울퉁불퉁하지. 신기해하며 만져보곤 하였다.

메론과 참외는 사촌지간이라고 하지만, 그 크기가 다른만큼 씨앗의 크기도 훨씬 커서 절대 씹어서 먹을 수 없다. 나는 참외의 씨앗 부분을 좋아했기 때문에 메론의 씨앗 부분이 버려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꼭 버려지는 씨앗 중에 하나를 떼어 괜히 씹어보곤 했다. 어린 나는 그걸 꼭 입에 넣어봐야 참외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뱉어내었다.


여름이면 메론을 주시고, 가을이면 생밤을 깎아주시던 할머니는 점점 나이가 드시면서 이전처럼 편하게 칼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셨고, 뭣보다 당뇨로 인하여 과일을 드시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점점 어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이상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할머니는 더이상 나를 웃으며 반기시지 않고, 나의 손을 쓰다듬으며 예쁘다해주시지 않는다.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임은 변하지 않지만, 나는 나의 할머니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 좀 더 부지런히 자주 뵈러 갔다면 할머니가 나를 좀 더 기억하실 수 있었을까. 좀 더 자주 연락을 드렸더라면 할머니와 더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덜 아쉬웠을까. 아마 과거를 어떻게 바꾸더라도 지금은 분명 아쉬움과 후회로 가득한 시간들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좀 더 자주 뵙기에는 상황이 또 그렇지가 못하다는게 또 다시 후회할 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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