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과 채소사이

by 오오리

"올해는 장마가 빨리 올거래"

스마트폰으로 뉴스탭을 살펴보던 짝꿍이 말했다. 보통의 장마는 6월 말에 시작되었지만, 올해의 장마는 그전에 시작한다는 기사를 보았단다.


장마가 오기 전에 반드시 먹어야 하는 과일이 있다. 참외 그리고 수박. 이 둘은 장마기간에는 일조량이 풍부하지 못해서, 과일이 물을 먹어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보관 기술이 좋아서 당도 높게 잘 보관할 수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면 7월이고, 7월부터는 복숭아를 먹어야 한다. 그렇다. 이게 진의다. 하지만 7월 말~8월의 무더위는 참을 수 없어 수박을 사 먹는다. 그때 먹는 수박도 마찬가지로 맛있지만, 솔직히 그때 먹는 수방은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는 살기 위해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외와 수박은 우리들에게 과일로 인식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과일은 아니다. 채소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또 채소류라고 하기에는 애매한지 과채류로 분류된다. 이는 대부분 알고 있는 정보이나 편의상 다들 과일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인다(딸기도 과채류던데, 이건 모른척하련다). 뭐, 마트에서 수박과 참외를 구매하려면 과일 코너로 가야 하니 과일이라고 하고 글을 끄적여보기로 한다.


본가에서 나는 일 년의 첫 수박을 5월에 먹었다. 엄마는 5월 초에 늘 첫 수박을 사 오신다. 그때에 수박을 판매하기 시작하는데, 마침 동생 생일도 있으니 겸사겸사라고 하셨다. 아마도 엄마가 수박을 먹고 싶으셨던 것이 구매이유겠지. 그렇게 우리는 동생의 생일날에 첫 수박을 먹고 난 후에는 더위가 시작되어야 수박을 다시 먹을 수 있었다. 결혼하여 이제 내가 스스로 과일을 사 먹는 지금, 나는 5월에 굳이 수박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때에는 가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직 수박을 먹어야 할 정도로 덥지 않아서 그다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름에 결혼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결혼은 수박과 함께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5평 남짓한 원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우리는 당연하게도 거의 1인용에 가까운 냉장고를 사용하였다. 옵션으로 붙어있는 냉장고였기에 뭐 바꿀 수도 없고, 바꿀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그래도 90L보다는 큰 냉장고였음에 감사했다. 아무튼 그렇게 작은 냉장고를 갖고 있으며, 나는 2인 가구로 살아본 적이 없기에 수박을 한 통 사도 될까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이걸 이 작은 주방에서 어떻게 손질할 것이며, 어떻게 보관할 것이며, 보관한다 해도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 구매한 수박은 1/4 크기로 잘라둔 수박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수박은 그날 저녁 후식으로 끝내게 된다. 남은 것이라고는 과육 하나 없는 껍데기뿐이었다. 어찌나 아쉬웠던지 숟가락으로 박박 긁으며 먹었다. 심지어는 그 하얀 속껍질도 먹을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 부분을 다듬어 반찬으로 먹는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숟가락으로 긁어서 아밀라아제가 잔뜩 붇어있기에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밀라아제라니. 연배가 나오는 용어다. 요즘 아이들은 아밀레이스라고 배운다고 들었다. 이렇게 세대차이가 날 수도 있다니. 아무튼간에 1/4짜리 수박에 부족함을 느꼈던 우리는, 그다음 날에 1/2 크기로 잘라둔 수박을 구매하였고, 이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한 번 먹고 남은 수박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다른 날에 먹어도 괜찮을 만큼의 양이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 수박은 바로 다음 날에 끝을 보였다. 둘이서 한 통을 사도 괜찮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손질할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작은 싱크대와 작은 식탁. 수방을 임시로 놔 둘 공간도, 편하게 자를만한 공간도 나오지 않았기에, 우리는 1/2 수박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지금의 나는 약 14평 정도의 집에 살고 있다. 여전히 둘이서 함께. 그리고 이제는 수박 한 통을 구매하며. 냉장고 크기는 그때와 같지만, 이제는 수박을 다듬을 공간이 넉넉하기에 부담이 없다. 6~7kg짜리 한 통을 구매하면 절반은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고로 들어가고 1/4는 바로 먹는다. 수박의 껍질과 가까이 붙어있던 부분들과 밀폐용기에 넣을 때 다듬었던 일부들을 합하면 마지막 1/4 정도가 되는데, 그건 냉동실에 넣어둔다. 얼린 수박은 갈아서 연유를 뿌려 먹으며 수박빙수가 된다. 이게 또 얼마나 맛있는지. 수박빙수를 먹으면서 빙수값도 많이 굳었다. 이런 식으로 수박 한 통을 사도 나흘이면 끝나는데, 이렇게 소비할 수 있는걸 왜 그렇게 반통 싹만 샀었는지. 아니다. 수박 한 통을 들이기엔 그땐 집이 너무 작았다. 그렇다. 우리는 규모에 맞게 현명한 소비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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