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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Jan 10. 2024

『지음』 을 인터뷰하다.

#01 가족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용기 있게 해요.
도망가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해요.


'백조'라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 「김지음」을 소개합니다. 백조는 겉보기엔 우아하고 도도하지만, 물 아래에서는 그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발을 움직이죠.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에 강인함이 깃든 지음 씨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꿈과 욕망을 숨긴, 쉰네 살,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줌마, 김지음입니다.




자기소개가 범상치 않은데요? 그럼, 지금은 어떤 일을 주로 하고 있나요?

최근엔 작은 봉사단 회장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가끔은 소리꾼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학생) 수업도 하고, 주부이자 엄마랍니다.



올해 특별히 다짐한 목표나 이루고 싶은 건 있나요?

더 건강해져서, ‘나만의 가지고 있었던 재능’을 끌어내서 사람들과 시너지를 내고 싶어요. 사실 올해 들어 많은 사람을 이끄는 일의 리더를 처음 맡게 되어서 아직은 낯설어요. 그렇지만 누구나 처음에는 다 모르니까…배우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미 그 분야를 해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잘하란 법은 없고, 또 제가 당장 시작했다고 해서 못 하란 법은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단 뭐든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네요.



그럼 ‘건강’이 목표라고 하셨는데, 건강을 지키고 싶은 루틴이나 습관을 따로 생각한 건 있나요?

일주일 내내 운동하기! 이틀 정도는 문화센터에 가거나, 뒷산에 좀 걸으러 가거나. 등에 땀이 흘릴 만큼 걸어보는 것도 목표예요.



기초 체력 하나는 보장되겠네요! 그럼, 이제 독자들을 위해 본격적인 질문을 하려고 해요. 제가 알기론 지음 씨는 무용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꿈을 가지게 된 계기나 스토리가 궁금해요.

아주 어릴 적, ‘청룡동’에서 시작했어요. 부산 ‘팔송’이 제 고향인데, 당시에 동네 미장원 집 딸내미가 ‘예쁜이 대회’를 나가면서 무용학원을 보내게 됐나 봐요. 혼자 보내기에 좀 그랬는지 저도 같이 보내자 해서 그 친구를 따라가게 됐어요. 그런데 그 곳 선생님께서 저보고 잘한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은 작정하고 무용을 시킬 생각은 없으셨어요.



어린 나이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편이었나요?

그냥, 그때는 꾸준히는 못 했어요. 하다가 중단했다가, 하다가 중단했다가. 그러다 그만뒀는데, 당시 그 학원에 회원이 없었던지(웃음) 선생님께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무용 계속해 보지 않겠냐고. 그런데 주위 어른들은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셨어요, 그런 거 왜 하냐면서.




그럼에도 무용을 좋아하셨으니까, 계속할 수 있던 것 아니었나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무용을 할 때 다들 저보고 예쁘다, 잘한다고 하니까, 그런 말을 듣는 점이 좋아서 계속했어요. 그래서인지 그만큼 진심이고 좋아했는지는 확신을 못하겠어요.

어느 날은 저희 아버지께서 미술학원을 보내주셔서, 가본 적이 있는데,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항상 미술 선생님께서 오셔서 전공을 바꿀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어요. 예체능 쪽은 시키면 시킨 대로 곧잘 해냈던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재능파’였네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이켜 봤을 때 슬픈 건, 주변에서 아무도 저에게 그걸 재능이라고 정확하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누구나 다 저와 비슷한 줄 알고, 스스로 특별하지 않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거 아니면 안 돼”가 아니라, 그저 생각 없이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저를 끌어주거나 밀어준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아쉬워요.



그럼, 캐나다에 있는 대학교에는 어떻게 입학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 준비하려고 콩쿠르에 나갔어요. 당시에는 콩쿠르에 입상되면 대학은 거의 합격이었거든요. 그렇게 입상하고, 서울 쪽을 포함해서 캐나다에 있는 대학교에도 원서를 넣었는데 덜컥 합격 통지서가 온 거에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점이, 외국으로 대학에 간다는 건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대사관에서 기각하거나 여러 이유로 못 갈 수도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모든 타이밍이 잘 따라줬어요.



가서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힘든 점은 없었나요?

대학교가 국립이 아닌 사립이라서, 생계비 문제가 가장 컸어요. 그래서 캐나다에 계신 친척의 제안을 받았어요. 친척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알바하면서 다닐 수 있게 한 거죠. 솔직히 정말 힘들었어요. 레스토랑이나 도넛 가게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밥하고 빨래하면서 열 몇 시간을 일했어요. 그러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연습을 하다가 어지러워서 넘어지고 그랬죠.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지음 씨가 계속 무용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였나요?

‘나는 안 하면 안 되니까.‘ 라는 마인드로 견뎠어요.



그럼, 대학 생활 4년을 채우고 한국으로 온 거에요? 어쩌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나요?

그렇죠. 4년을 다 못 채우고, 마무리도 제대로 못 짓고 들어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한국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원래도 나이가 좀 있으셨다 보니 몹시 아프셨어요. 그런 데다가 친척이나 주변에서 도와줄 사람 한 명 없어서, 혼자서 너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는 예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답니다. 한국 오자마자 생계를 위해 바로 에어로빅 강사와 영어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속상하네요. 그럼 한국에 오자마자 일을 시작한거예요?

오전에는 에어로빅 강사, 오후에는 무용 강사 그리고 영어 학원 강사로 일했어요.



그때는 시급이 얼마 정도 였나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정말 적었던 걸로 기억해요. 많이 못 받았어요. 에어로빅 강사를 1년을 하다가 그만둔 이유가, 일한 만큼 못 받은 것도 있어요.



잠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겠네요. 저희 아버지이자 남편분을 그 영어학원에서 만난 걸로 알고 있는데, 일한 지 얼마나 되었을 때 인연이 되었나요?

첫날에…. (웃음)



첫날에요? 저도 이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제가 강사로 간 건 맞지만 학생처럼 수강도 함께 할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앉아서 교재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인연이 시작된 거죠.



그럼, 본격적으로 두 분이 서로 호감이 있다고 알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그때는 그런 거 없었어요. 그냥 자연스러웠죠. 집 가는 방향도 같았고, 서로 자연스럽게 알아차린 것 같아요.



고백은 누가 먼저 했어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햄버거 데이트> 이야기 유명하잖아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배고파서 제가 먼저 ‘햄버거 먹으러 갈래요?’ 라고 말을 꺼냈는데 미팅하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저도 기분이 상해서 그대로 집에 갔는데, 저녁에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미팅하러 간다면서요’ 하니까 그냥 나왔대요. 그러고선 신문지에 돌돌 말아진 떨이 장미를 받았던 것 같네요.



풋풋했네요. (웃음) 그러고 보니까 지음 씨가 스물여섯에 '결혼'과 '출산'을 모두 해내신 거죠? 지금 우리 세대가 보기엔, 사실 정말 어린 나이에 그런 큰일들을 해냈다 보니 대단해 보여요. 겁도 많이 나셨을 텐데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나요?

용기라기보단,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있었어요. 당연하게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럼, 지음 씨의 스물아홉은 세 살배기 아이가 있고 결혼한 지 3-4년 차가 되어 갔잖아요. 스물아홉인데 결혼 혹은 아이가 있어서 유독 힘들게 느껴졌던 시기나 슬럼프가 있었나요?

육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도 못 느끼고 지나갔던 것 같아요. 출산도, 육아도 다 처음인데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수현이는 태어나고, 잘하고 싶은데 몸은 또 아프고. 그렇지만 내 아이니까 버텨야지 했던 것 같아요.



당시 형제, 자매가 없어서 의지할 사람도 많이 없고 힘들었을 텐데 산후우울증은 따로 없으셨나요?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내 아이가 싫거나, 떼어 놓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이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싶다.’ 그 생각뿐이었어요.



대단하네요. 저라면 절대 못 했을 것 같아요. 지음 씨의 스물아홉 중, 기억 나는 한 장면이 있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나이가 많고 늙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매번 주위에서도 ‘빨리 시집가야 해’ 또는 ‘네 엄마, 아빠 죽기 전에는 시집가야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컸거든요. 그래서인지 늘 마음이 무거웠어요. 막, 내 편이 없는 것 같고, ‘우리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시면 나는 어떡하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공포감이 심해서, 자다가도 옆에 엄마 아빠가 누워 계신 거 보면서 매번 울고. 엄마가 ‘와 우노’ 이러면 ‘엄마 죽지 마!’라고 말하면서 막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외동이라서 그런 마음의 짐들이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을 나눌 형제, 자매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저는 그런 이유인 줄도 모르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냥,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일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면모들이 다져지면서 지금의 단단한 지음 씨를 만든 것 같아요. 제가 볼 땐 외유내강 스타일이거든요. 한두 마디를 나눠봐도 말에 묻어나는 삶의 풍파나 지혜로움이 굳이 어릴 적 힘든 시절을 먼저 드러내지 않아도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줘요.

사실 저를 처음 본 사람은 제가 아무것도 할 줄 몰라 보인다는 말을 할 때도 있지만(웃음),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은 그렇게 말해주더라고요. 단단해 보인다면서.



지음 씨는 자신이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나요?

음, 우리 엄마를 간병하면서요. 엄마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자식에게 사랑을 준다는 걸 알았어요. 물론 간병할 때는 힘들었어요. 그 시기에는 제 삶을 살 수 없었으니까요. 만약 엄마가 안 아프셔서 간병하지 않았다면, 저도 제 경력을 쌓았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돈을 벌거나, 저만의 자리를 잡았겠죠? 그래서 솔직히 궁금하기도 해요. 가보지 못한 나의 3-40대가.


50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활동을 하려니, 솔직히 처음엔 막막하고 어려웠어요. 사람들이랑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도 까먹은 기분이랄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었어요. 여행도 가고 싶은데, 갑작스러운 암 수술까지 하면서 정말 허무하고 화가 나고 무섭더라구요. 아직 안 해본 것들이 너무 많은데.



마음고생이 정말 심하셨죠. 잘 이겨내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네요.

저도 그랬지만, 간병하면서 우리 가족도 참 많이 힘들었어요. 몸과 마음이 힘들다 보니 어린 수현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그 아픔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지만,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느꼈거든요. 그 와중에 삐뚤게 안 큰 우리 딸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제가 좋은 거 맛있는 거 많이 먹였으면 더 튼튼했을 텐데… 한창 클 때 제 에너지를 모두 쏟지 못한 점이 미안할 따름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되어요, 지음 씨! 저희는 잘 컸답니다.

갑자기 저도 우리 엄마가 보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제3-40대가 사라져서 아쉽지만, 그만큼의 아픔과 고통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들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동안 고생한 만큼 선물처럼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기더라고요. 저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사이버 대학원에서 자격증도 따고 그랬어요. 돌이켜보니 그래도 짬짬이 뭘 많이 하긴 했네요!



그와중에 정말 부지런하셨네요. 자격증은 어떤 걸 따신 거예요?

원래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그쪽으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몸이 아프고 힘드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도 레크리에이션, 사회복지사, 다문화가정 관련해서 총 3개를 땄어요.



마지막으로, 혹시 저와 같은 전국 스물아홉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나요?

도망가지 말고, 용기 있게 해요. 저는 그러지 못했던 걸 가장 후회 해요. 도망가면 아무것도 못 하거든요. 그래서 도망가지 말고 한 번 부딪혀 봤으면 해요. 생각보다 쉬운 건데 안 해 봐서 어렵다고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여러분보다 훨씬 어릴 적에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는걸요! 천천히 잘해보면 분명 잘 풀릴 거예요.



지음 씨가 이야기하니까 더 와닿는 말이네요. 마지막 질문으로, 혹시 미모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칠성사이다'랑 '새우깡'입니다!



지금 당장 편의점으로 가야겠네요! 그럼, 소녀 같은 마인드의 비결은요?

타고났어요-! (웃음)





첫 번째 주인공은 덤덤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오며 지혜로움을 쌓아온 「김지음」 이었습니다. 

스물 아홉들에게 울림​이 되었길 바라며, 다음 인터뷰 주인공도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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