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동갑내기로부터
어느덧 10월,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의 열기도 식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변한 날씨에 퍽 섭섭하기도 하죠.
오늘은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아 모두가 편안함을 느끼는 계절 ‘가을’처럼, 자신만의 온도를 잘 유지 중인 주인공 ‘예진’을 소개해요. 예진 님은 직장에서 알게 된 동료이자 저와 같은 스물아홉 동갑내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어떤 일을 겪더라도 차분함을 유지하는 태도와 일관성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꾸준하게 롱런하는 호흡법’을 가진 그녀가 궁금해진 저는,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부지런히 회사를 다니며 블로그를 운영 중인 예진 님. 현재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수익 창출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스스로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늘 기록과 함께했어요. 다이어리를 쓰고, 블로그를 포스팅하고, 사진을 찍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을 기록해 왔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리 1월을 넘기기 어려워합니다. 그만큼 하루를 정돈하고, 또 기억해 내야 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죠. 그녀가 언제부터 이런 기록을 시작했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특정한 계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단지 중국에 약 1년 정도 머물렀을 때 블로그에 일기를 쓴 것이 시작이었다고 해요.
“그때가 7년 전쯤이었는데, 당시엔 블로그를 통해 수익화가 가능한 지는 전혀 몰랐어요. 말 그대로 일기를 쓰는 목적으로 사용한 거죠. 그러다 점차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둘러보며, 일상뿐만 아니라 유익한 정보나 후기를 쓴 글들을 접했어요. ‘블로그를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답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씩 직접 사용한 제품을 설명해 보거나 음식이나 장소에 대한 정보성 글을 쓰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하지만 블로그 활동을 7년 내내 이어서 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바쁜 하루를 지내다 보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럼에도 완전히 중단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 ‘매일 써야 해’라는 스스로 만들어 낸 압박감이 저를 괴롭히고 있더라고요. 직장생활이나 일상에서 정신적으로 지치는 날이 지속될 땐 한동안 놓아버릴 때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습관처럼 다시 기록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래서 ‘내버려 두고 - 다시 쓰고’를 반복하다 보니 저에게 맞는 주기를 찾았고,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속하고 있어요.”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먹든 기록하는 일상이 습관이 된 그녀. 그런 기록들은 그녀에게 어떤 점을 남겼을까요?
“우선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되고요. (웃음) 지인들과 이야기하다가 무심코 ‘그때 그 장소가 어디였지?’라는 말이 나오면 제 블로그에 거의 모든 답이 다 있어요. 그러면서 당시에 썼던 글들을 읽고 있으면, 그때 나눈 대화나 인상 깊었던 기억도 함께 떠오르는 점이 좋더라고요.
또, 지금은 수익화를 목표로 열심히 활동 중인 것도 있어요. 진정성을 담아 썼던 글이 또 다른 협찬 등 좋은 기회로 이어지면 뿌듯하고 일상에서 원동력이 됩니다”
블로그 경력이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한 들, 꾸준한 수익화를 위해서라면 관리가 철저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일상 글과는 다르게, 업로드 기간이나 체험 장소 등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본업과 병행하려면 어떤 점이 중요한 지 물어봤습니다.
“수익과 연계된 글은 특정 브랜드나 기업과 협업을 한 거예요. 말 그대로, ‘약속’인 거죠. 그만큼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사소한 부분 하나로도 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한다’에요. 저 같은 경우는 아무리 마감기간이 오래 주어져도, 가능한 빠르게 마무리합니다.
다만, 일상과 직장 생활에는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도록 조절하는 점도 중요해요. 블로그 활동에만 치중하느라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컨디션이 저하되는 건 오히려 제가 가진 것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함이 목표라면, 무엇이든 조화롭게 조율할 필요가 있어요.”
예진 님은 이렇게 자신만의 루틴을 찾으며, 수익화뿐만 아니라 전문성까지 함께 쌓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합격에도 블로그의 몫이 컸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제 블로그 경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어요. 저도 개인적인 취미에 한정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재직 중인 회사 면접 당시 블로그를 보여드렸을 때 정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어요. 각종 디자인 작업부터 콘텐츠 구성력 등 직무에 적합한 스킬을 자연스럽게 PR 할 수 있었죠.”
누구보다 강인하고 반짝거려 보였던 인물이,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목격한 적이 많습니다.
그만큼 각박해진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는 것을 어려워하죠. 타인에겐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쉽게 그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진 님은 자신만의 속도와 호흡을 유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줬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하고, 담백한 방법이었습니다.
“힘들 때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를 하는 편이에요. ‘파워 N’이라서, 혼자 있으면 최악의 최악까지 상상하며 지하 끝까지 몰고 가는 성향이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주위에 알리고 이야기를 하며 고립을 피해요. 공감이든, 조언이든 어쨌든 혼자서 단정 짓는 편협한 사고에선 벗어날 수 있고 적당한 환기도 되니까 오히려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기더라고요.”
사람들은 살아가며 누구나 쉬어가는 시기가 있습니다. 또, 저마다의 때가 있는 법이죠. 예진 님도 이 말에 동의하며, 꾸준함을 위해선 상대방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보단, 온전히 내 목소리에 집중하며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꾸준히 지속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원인은, 모두 제가 만든 ‘틀’ 때문이었어요. 특정 수치 달성만 바라보고 무리했더니, 제 패턴이 망가지고 결국 흥미와 열정마저 잃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과 공을 들여 어떤 일에 대한 인사이트가 쌓이고 있다면, 이왕 하는 거 오래 지속해서 차별적인 나만의 무기를 만들면 더 좋잖아요. 그것들이 무너지지 않게, 스스로를 돌보며 적당히 쉬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에 주위에선 한숨과 탄식이 들려올 때가 많은데요. 예진 님은 올해에 대한 미련보단 최근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 여러 온라인 강좌도 듣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20대 초중반 때, 서른을 기점으로 해외로 훌쩍 떠나거나, 공부를 시작하거나, 회사를 떠나 다양한 영역에 도전을 하는 분들을 많이 봤는데 이제 저도 그분들의 심경에 공감이 가요. 왜 서른에 유독 그런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인지 알 것 같달까요.
이쯤 되니 반복되는 생활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안주하기보단 서툴러도 도전하는 제 모습이 낯설지만 뿌듯할 때가 많아요. 조금씩 성장도 하고 있고, 미래의 저에 대한 기대감도 생겨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접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수인데요(웃음), 그래서인지 오히려 직장생활이 덜 괴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오히려 배움을 통해 얻은 긍정적인 자극이, 다른 분야를 또 도전하게 만드는 자신감마저 만들어주며 건강한 순환이 된다고 합니다. 고요하지만 조금씩 자신의 역량을 넓히고 있는 예진 님, 그녀가 그리는 내년의 모습은 어떨까요?
“저는 최종적으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그 기반을 다지는 것으로 올해 연말부터 꾸려나갈 생각입니다.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타이밍이 왔을 때 바로 실행할 수 있게 천천히 준비를 하고 싶어요. 느리더라도 지금부터 완벽하게 초석을 다지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죠. 그래서 관련 강의나 수업이 열리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있어요”
예진 님과 저는 대화를 통해 왜 한국에서 유독 ‘서른’과 ‘도전’의 키워드가 자주 언급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시가 중요시되는 우리나라에서는, 학창 시절까지 다양한 일과 사람을 접할 수 있는 실전 경험이 다소 부족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야 대학, 아르바이트, 연애, 경제활동 등을 거쳐 수많은 인사이트가 쌓이고 비로소 자신의 기호와 자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할 수 있죠.
20대에 이런 성찰과 고뇌로 시간을 보냈다면, 서른에
이르렀을 때 자신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슬며시 듭니다. 지금의 저와 예진님이 그런 것처럼요. 그래서 지금 시기에 도전하는 건 결코 늦거나 특이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 화산같이 폭발하는 에너지를 가진 건 아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며 힘에 부쳐도 갑작스러운 번아웃으로 쓰러지지 않는, 꺼지지 않는 용광로처럼 계속 흐를 수 있는 방법. 오늘은 예진 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며 차분하게 나의 온도를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열 번째 주인공은 가을을 닮은 「예진」 님이었습니다. 스물 아홉들에게 울림이 되었길 바라며, 다음 인터뷰 주인공도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