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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Jun 30. 2024

『명주』 를 인터뷰하다.

#08 동갑내기로부터

여러분 주위에는 무언가에 굉장히 진심이거나 몰입하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혹은 새로운 변화나 탈피를 꿈꾸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인 지 n년째인가요?


여기, ‘바차타’와 ‘스페인어’에 완전히 빠져 꾸준히 실력을 다져오다가, 올해 9월 다니던 직장의 퇴사를 결심하고 스페인 대학원으로 향하는 제 친구가 있습니다.


이제는 ‘명주’라는 정감 가는 한국 이름보다 ‘비앙까’ 혹은 ‘뱡까’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정도로 열정 가득한 면모를 보여줬는데요. 명주 님은 전 직장에서 제가 인사팀이었을 때, 온보딩 멘토링을 진행하다가 알게 된 사이입니다. 첫 만남 당시, 서로 동갑인 것을 알고 빠르게 친해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눈을 반짝거리며 '언젠가 스페인에서 공부를 더 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찬 말을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 대화를 나눈 지 어느덧 2년, 마침내 대학원 합격을 시작으로 정말 자신의 목표에 가까워지는 모습이 정말 멋있지 않나요? 오늘은 남다른 열정의 소유자 ‘명주’ 님을 만나보겠습니다.



#1

무색무취 인간,

독일에서 취향을 발견하다.



자기의 취향과 취미로 가득 차 있는 명주 님의 일상, 저는 문득 예전부터 타고난 그녀의 기질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어요.


“저는 정말 평범했던 사람이었어요. 좋아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누군가가 저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러닝머신과 자전거 타기, 영화 보기, 음악 듣기’ 이게 다였어요.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엔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이 목표였어요. 정말 정석적이면서도 재미없는 사람이었죠."


명주 님의 아버지께서는 그녀가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바라셨습니다. 명주 님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 가슴이 답답했지만 그저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생 때 독일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며, 명주 님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독일 교환 학생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워졌어요. 정말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고 그 친구들은 굉장히 독립적이었어요. 물론, 그중에서도 부모님께 지원받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진로나 자신의 생계를 찾아 떠나다 보니 ‘부모님의 기대’와 같은 압박감이나 개념 자체가 없는 편이었어요.”


그렇게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무엇이든 도전하는 친구들을 보며 명주 님은 엄청난 자극을 받습니다.


“남미의 에콰도르가 고향이었던 어떤 친구는, 악착같이 독일어를 배우면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더라고요. 그렇게 노력하며 결국 잘 정착한 걸 보며 많은 걸 느꼈어요. 한국에서 꽉 막힌 것만 보고 듣다가, 그곳 생활을 통해 제 사고가 열리게 된 거예요.”



#2

스페인어로

모두 하나 되다.



명주 님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 취미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말해줬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어떤 것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취미라고 하면, 좋아하는 마음 이외에도 ‘꾸준히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아서 하는 것이라도 1년에 한두 번에 그치면 그건 취미라고 생각하기엔 어려워요. 그러니까 내가 재미있게 느끼면서 꾸준히,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그 활동을 하는 것이 지속되어야 유의미하고 봅니다.”


이쯤 되니, 명주 님이 스페인 유학까지 결심하게 만든 취미에 담긴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그녀의 취미는 2개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스페인어, 다른 하나는 춤입니다. 춤 장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라틴 댄스인데, ‘바차타’나 ‘살사’를 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어는 독일 교환 학생 시절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살았던 지역은 ‘파사우’라는 곳인데, 뮌헨에서 약 한 1시간 정도 걸려요. 강이 정말 크고 아름다워서 매년 여름마다 보트 파티가 열리곤 했어요. 보트별로 장르가 있었던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죠. 어떤 보트 파티는 EDM, 어떤 보트는 80년대 올드 팝송이 흘러나왔어요."


그곳에서 명주 님은 우연히 ‘레게톤’ 파티에 가게 됩니다. 레게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레게 비트 위에 라틴 랩 또는 라틴 팝을 얹은 장르라고 해요. 그 파티가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세상에, 그 노래 취향이 저랑 너무 잘 맞은 거죠. 한국의 케이팝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노래마다 특정 안무가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서 그 안무를 모르면 춤을 추고 싶어도 흥미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 장르는 기본적으로 리드미컬한 베이스를 느끼며 누구나 자유롭게 춤을 추더라고요.


결정적으로, 레게톤은 대부분 스페인어로 구성된 음악이었어요. 모두 다른 국적인 사람들이 스페인어만으로도 소통이 되고, ‘떼창’을 부르며 하나가 되는 현장을 목격하니 정말 신기하고 마음이 동요했어요. 아무래도 라틴어에 뿌리가 있는 유럽 국가가 많다 보니, 배워두면 앞으로도 여러 문화의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 유리할 것 같았죠.”


그렇게 졸업 직전부터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명주 님. 다른 공부를 제쳐두고 스페인어를 할 때만큼은 유독 신이 났다고 합니다.


“4학년 2학기 때는 마지막 학기다 보니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거든요. 책을 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어요. 그럼에도 스페인어를 공부할 생각엔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서 ‘스페인어 딱 30분만 공부하고, 내 전공인 경영학과를 공부하자.’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책상에 앉게 되더라고요. 그게 엄청나게 큰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새 명주 님은 스페인어 수업을 직접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고 합니다. 함께 바차타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이, 춤을 출 때 듣는 노래의 뜻을 알고 싶어 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주 님은 딱딱한 원서나 시험 문제가 아닌, 노래로 즐겁게 스페인어를 익히게 되는 소규모 수업을 기획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춤만 추고 노래 가사는 모른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실제로도 가사의 뜻을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았죠. 바차타라는 장르가 한국에서는 생소한진 몰라도, 전 세계적으로는 정말 유명해요. 그리고 스페인어를 쓰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신곡이 끊임없이 나와요.


그래서 저는 스페인어에 대한 허들을 낮추고,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 수업의 목표였어요. 물론 제가 전공생이나 전문 강사는 아니기 때문에, 수업 진행에 있어서는 부족한 점은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추는 춤의 노래 가사를 알고 추는 건 모를 때와 춤의 이해도가 달라지죠.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다들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그렇게 1년 넘게 수업을 해오고 있어요. 물론 노래 가사다 보니, 조금 야한 소재나 (웃음) 속어 같은 표현도 나오지만, 그만큼 서정적이고 한 편의 소설 같은 서사로 구성된 가사가 많아요. 저도 노래를 통해 표현을 많이 익힌 경우죠. 이렇게 수강생들에게 알려주고 저도 공부에 더 매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3

열정과 낭만의 바차타,

“하지만 넌 직장인이잖아!”


스페인어에 이어, 명주 님은 또 다른 취미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바로 ‘바차타’였죠.



“교환 학생 시절, 소규모 클럽에서 바차타 워크숍이 열릴 때 참석한 적이 있어요. 정말 놀랐던 점이, 제 또래 친구들이 모두 그 춤을 출 줄 안다는 것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 추며 가족이나 친척이 모일 때마다 추는, 전통적인 개념이었어요. 그 친구들에겐 당연한 건데, 한국이나 아시아권에서는 그런 문화는 드물잖아요. 또, 열정적인 춤사위와 다르게 가사가 서정적인 의미라서 더 끌렸어요.”


그렇게 명주 님은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바차타를 잊지 못해, 클래스를 찾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며 어느새 공연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그러던 도중, 몇 번의 고비가 찾아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처음과 달리, 춤에 진심이 깊어질수록 스스로 부족한 점이 보였던 거죠.


“어릴 때 춤을 춘 적이 없고, 심지어 몸치다 보니 남들보다 안무를 익히는 속도가 느렸어요. 오히려 초보일 때는 무엇을 배우든 재밌고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중급 단계에 접어들다 보니 스스로가 애매하게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정점이었던 날들이 첫 공연 준비를 할 때였어요. 아무래도 파트너와 함께하는 공연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저를 제외한 경력자들을 따라가기에 너무 벅찼어요. 기존 바차타 안무는 노래가 나오면 자유롭게 추는 동작 위주인데 공연은 짜여진 안무로 무대에 올라야 했죠.



안무 중 하나가 파트너 남자분 손을 잡고 반동을 이용해서 다리 사이로 이동해야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 파트너를 믿고 스스로를 완전히 놔 버려야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구두를 신고 그런 동작을 해야 하는 게 무섭고 안무가 서툴다 보니 실수를 정말 많이 했어요. 나중에 무릎에 멍으로 뒤덮일 정도였죠. 그럼에도 팀에 민폐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연습에 매달렸어요. 그때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저 취미의 일환인 춤에 이렇게 진심일 수가 있을까요.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대단했습니다. 다만 직장과 자기 계발을 병행해야 하는 삶 속에서는 조율이 필수라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아무래도 점점 욕심이 생겨서 바차타에만 빠져 있었던 시절이 있어요. 자연스럽게 춤을 추지 않는 일반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죠. 반대로 바차타를 추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어요. 물론 함께 즐겁게 춤을 출 땐 정말 좋지만, 매 수업이 끝난 후 흥에 겨워 술도 곁들일 때가 많았어요. 즉, 유흥이 늘 함께 하기 때문에 너무 빠지게 되면 저도 모르게 도파민에 휩싸여 현실감각이 무뎌지게 되더라고요.


저는 댄서가 꿈이 아니기 때문에, 바차타라는 취미를 자기 계발 중 하나와 일상을 지키는 선에서 페이스를 조절하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4

La vida es mas bella bailando!

인생은 춤출 때 더 아름답다!


결국 그녀는 취미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열정을 찾고, 스페인 대학원까지 결심하게 됩니다. 다니던 직장도 퇴사 후 떠나게 되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 걸까요?


“사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꿈이었어요. 교환학생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스페인어가 정말 재밌었고 더 나아가 남미 쪽에서 살아보고 싶었죠. 그 당시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셨어요. 가더라도 우선 한국에서 취업 후 경력을 쌓은 후에 생각해 보라고 하셨어요.



제가 스페인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잖아요?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과 매주 수업하는 사진을 보내 드리면 부모님께서도 제 진심을 알아봐 주시고 함께 응원해 주셨어요. 그렇게 최근 들어서야 부모님께 스페인 유학의 허락을 받게 되고, 감사하게도 아버지께서 공부하는 것을 일정 지원까지 해주겠다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가게 되었네요!”


스페인에 잠시 정착 후, 공부 이외에도 이루고 싶은 다른 목표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스페인 취업 시장에 도전해 보려 해요. 솔직히, 스페인은 현지인들도 취업이 힘들고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리고 취직한다 한들, 제 상황을 고려해서 한국에 비해 연봉도 높지 않은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잠시 유학 생활을 하는 것과, 제가 그곳의 생활인이 되는 건 경험의 깊이 자체가 달라지죠. 그래서 금전적 수익을 떠나서 그 도전 자체에 가치를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단하진 않지만, 현지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바차타나 살사를 배우고, 또 그곳의 외국인들과 함께 공연해 보고 싶어요, 정말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대학원이 끝이 아니라, 더욱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놓은 명주 님이 더욱 빛나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명주 님처럼 도전과 실행에 대한 결정을 두고 고민하는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들어봤어요.


La vida es mas bella bailando! ‘인생은 춤출 때 더 아름답다’라는 뜻의 스페인어예요. 저는 춤을 시작하게 되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했어요. 춤에 몰입해 있는 제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보게 되면, 정말 행복해 보이거든요.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저를 마주하며, ‘내가 이런 표정도 있었구나,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면 즐거워요.



새로운 변화나 결심을 하는 데 있어, 우리나라 정서상 장벽이 많을 거예요.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마음에 걸리는 것도 많고, 부모님 반대처럼 제한 사항이 많을 수도 있죠. 그런데 내 인생의 주인은 나예요.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는 분야라면 설득 자체에 에너지를 쏟지 마세요. 그냥 저질러요. 적정한 선 안에서 저지른다고 해서 갑자기 주위 환경이 바뀌거나 사람들 혹은 가족들이 여러분 곁을 떠나진 않아요. 그래서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빨리 시작해요!”





여덟 번째 주인공은 취향 발견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개척 중인 「명주」 님이었습니다.

스물 아홉들에게 울림이 되었길 바라며, 다음 인터뷰 주인공도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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