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금금 Jan 24. 2024

정수기 점검을 하는데 설거지가 쌓여있었다.

'띵똥'


카톡 알림음을 보니 오늘 정수기 점검을 위해 매니저 분이 오시기로 한 날이었다. 마침 큰 아이가 방학이라 평소와 달리 부지런을 떨며 거실을 말끔히 정리하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불 두 장을 마저 정리하려던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누군가 집에 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편이라 마저 정리하지 못한 이불이 있든말든 밖에서 기다리실 매니저님을 향해 현관문으로 단숨에 갔다.


"오늘 점검은 15분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필터 교체가 없는 날이라 빠르게 정수기 점검이 끝난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이불을 마저 정리하고 바닥에 있는 먼지를 정리하기 위해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주방은 평소와 달리 깨끗한 편이었다. 싱크대 상판에 올려진 것들은 없었고 마른걸레로 한 번 닦아 놓기까지 해서 말끔한 모습으로 매니저님을 맞이했다. 불안요소가 있다면 설거지하지 못하고 쌓아 놓은 그릇들이었다. 애벌로 한 번 씻어 놓은 상태였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그릇더미를 가리기 위해 커다란 나무 도마로 덮어 놓았다.


청소기를 밀며 주방으로 움직였다. 정수기 점검이 어련히 잘 되고 있을 테지만 싱크대에 가려 놓은 도마가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슬쩍 눈을 돌렸다. 그런데 도마의 위치가 원래 있던 곳을 벗어났다. 싱크대를 벗어난 도마 아래로 설거지되지 않은 그릇들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정수기 점검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는데 싱크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매니저님은 물을 사용하기 위해 그릇 몇 개를 옆으로 옮기고 수전과 쌓아진 그릇 사이의 틈 안에서 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제 애벌 설거지를 할 게 아니라 미리 해 놓았으면 매니저님이 덜 불편했을 텐데'


하지만 어제 나에겐 설거지를 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제 애벌이라도 해 놓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정리한 게 기특했는데, 나 혼자만의 주방이 아니라 누군가가 사용함을 알아차렸을 때는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즐겨 보는 방송 프로 <나 혼자 산다>를 보면 설거지를 하는 두 가지 부류를 볼 수 있다. 동전의 앞 뒤처럼 구분하자면 즉시 치우느냐, 쌓아두고 몰아서 하냐 두 가지 아닐까. 앞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확실히 쌓아두고 미뤄둔 뒤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타입이다. 요리를 하면서 나오는 그릇을 바로 설거지하고 먹은 뒤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하는 남편과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요리할 때 그릇을 많이 쓰면서 바로 물에 헹구지 않고 쌓아두기 일쑤다. 대체로 밥 먹은 뒤 일단 싱크대로 몰아 놓고 주방 불을 끄고 들어 간다. 주부로서 해야 할 일 중 가장 큰 일은 아이들 케어와 밥상을 차리는 것이었으니 저녁 설거지까지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로 쿨하게 주방을 돌아선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인데 말이다.


하필 집 안에 그릇이 많은 것들은 미뤄두기 좋아하는 성향에 촉진제 역할을 한다. 며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 단점이라면 미관을 해치는 것과 유치원생 딸의 수저를 챙기는 일 정도랄까. 이마저도 아침에 싱크대를 뒤져서 금세 닦은 후 챙겨 보내는 일이 빈번했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주방 모서리에 싱크대를 만든 탓에 우리 집 싱크대는 조금 작은 편이다. 모서리 끝에 위치한 식기 건조대는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어서 4 식구가 먹은 설거지와 냄비등을 올리고 나면 아슬아슬하게 산등성이처럼 쌓이고 만다. 밥그릇이 많이 쌓이는 날은 피사의 사탑처럼 무너지지 않는 균형을 유지 한 채로 높이 높이 쌓여간다. 이제 갓 마르기 시작한 그릇 위에 무언가 더 올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일까? 건조대에 그릇이 있으면 유난히 더 설거지하기가 싫다.


바로바로가 안 되는 내가 타협한 것이 있다면 건조된 그릇을 서랍 안에 넣고 애벌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음식물이 있으면 설거지는 더 하기 싫다. 종류에 맞지 않는 그릇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도 설거지하기 싫은 이유 중 하나이다. 특별히 그릇이 많이 쌓여 있는 날에는 대대적인 설거지를 하기 전에 그릇에 묻어 있는 음식물을 한 번 닦아 내고 종류별로 분류해 놓는다. 컵 따로 밥그릇 따로 놓고 나면 설거지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좁은 건조대에 테트리스하듯 쌓는 일도 수월해서 한 번에 많은 양의 설거지가 두렵지 않다. 진이 빠질 뿐.


설거지를 바로 하면 한 번에 해결될 문제인데 어떻게 해서든 효과적으로 쌓아두고 한 번에 하기 위한 요행을 바라고 있는 내가 우습지만 변명이라도 해보자.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는 핑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씻겨야 하고 숙제도 봐줘야 한다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유들이 있다. 어떤 핑계가 됐더라도 게으름에 그럴싸한 이유는 될 수없다. 아이들이 등원을 하든 학원을 가든 분명 '시간'은 있다. 하지만 설거지를 효과적으로 미뤄두면서까지 제 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슬아슬 쌓여가는 기막힌 나의 설거지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 욕심에 가득한 허울들이었다. 설거지를 안 하는 만큼 그 시간에 분명 무언가를 할 것이다. 설마 멍 때리고 있으려고 설거지를 미뤄두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도 쌓여 있는 설거지가 있지만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나는 집안일보다는 나를 살리기 위한 행위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에게 설거지는 노동이다. 밥을 먹기 위한 그릇을 씻는 일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신념이 없다. 더러워진 그릇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을 하는 순간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 만족감이 차오른다.


살림이 콘텐츠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깨끗하고 분위기 있는 집안을 연출한 것이 글의 소재가 되고 영상의 콘셉트가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주부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나에게 살림은 내실을 채울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마지노선의 끝에 설거지를 하고 있다. 적어도 가족들이 밥을 먹어야 할 때 필요한 그릇은 있어야 할 정도의 의무는 거스르지 않는 채로.


하도 설거지가 쌓이다 보니 이제는 영리하게 게을러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든다.


- 자기 전 싱크대 위는 정리한다

- 애벌이라도 해서 설거지할 그릇은 정리한다

- 물기가 마르면 식기 건조대 그릇을 정리한다


이 정도만 해도 여름에 초파리가 날리는 악순환의 사이클을 끊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당당히 즐기려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을 모른 척할 수 없다. 매일 부지런히 할 수 없다면, 싱크대 앞에 다가서고 싶을 정도의 여유를 마련해 둬야 할 것 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