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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Apr 03. 2024

군대 기상나팔 소리를 듣고 일어납니다

무거운 눈이 번쩍 떠진다. 자연스럽게 동공이 안구 안에서 굴러 동그란 시계를 바라본다. 긴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2니까... 아직 10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작은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7이어야 하는데 8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건 눈곱에 의한 착시인 걸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8시라는 것을 알아챈 나는,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부터 부리나케 깨우기 시작한다.


"늦었어, 어서 가서 옷부터 입자"


이때부터 논쟁은 시작됐다. 


"밥부터 먹을래"


학교에 8시 40분까지 가야 하는데 밥을 먼저 먹으면 늦을 게 분명했다. 아이를 달래서 옷방에 모셔두고 아침밥을 차린다.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딸을 향해 가보니 망부석처럼 옷장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왜 옷을 고르지 않는지 궁금한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도 없는데 혼자서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여유로운 딸의 모습을 보니 도화선에 불이 붙다.


"학교 늦었는데 아직도 옷을 안 고르면 어떻게 해?"

"입고 싶은 게 없어, 그리고 나 밥부터 먹고 싶어"


울화가 목젖까지 차올라 고운 소리가 나가는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옥타브는 올라갔고 아이와 나의 눈에서는 보이지 않는 레이저가 초가산간을 태울 것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지못해 옷을 입고 공룡 발소리처럼 쿵쿵쿵 소리를 내며 식탁에 앉았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는 것도 아닌데 여유를 부리며 아침을 먹는 딸을 보며 발을 동동 구다.


"빨리 먹을 수 없을까? 이러다 늦겠는데?"

"엄마, 이거 다 먹고 가고 싶어"


먹고 싶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양치라도 서두르라며 또 딸을 채근했다. 불만으로 가득 찼던 풍선늘어 얇은 피막이 드러날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딸의 불만 섞인 한마디에 인내심으로 부여잡고 있었던 불만 풍선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안에서 터져버렸다.


딸을 부여잡고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학교를 늦으면 안 되는 이유에서부터 나열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제는 딸이 늦었다고 보채고 있었다. 하지만 기관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긴 엄마의 입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물 콧물 모두 쏟아내고 지각을 하지 말자는 약속을 하며 아이는 학교를 갔다.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다 머리에 총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엄마인 나는 왜 늦게 일어났는가!


남편이 질책하지 않았지만, 사실을 전달한 것만으로 끄러움은 민낯을 들킨 것 같았다. 방귀 뀐 놈이 성냈다. 내가 늦게 일어나서 준비가 늦어진 것도 있는데, 엄마말에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며 딸에게 화를 냈다.


7시 30분에 일어나서 같은 상황이었어도 화를 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화가 났어도 이 정도로 화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교 가기 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조바심 났던 마음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일찍 일어나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일을 개선하기 위해 남편은 여러 가지 방안을 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집의 기상 시간을 정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남편은 딸과 내 핸드폰에 7시 30분 알람을 맞추고 군대 나팔 기상 소리를 설정해 놓았다.


빠빠바바 빠바바밤


다음날 아침, 군대 나팔소리가 크게 집 안을 울렸다. 기존에 들리던 잔잔하면서도 귀를 귀찮게 하던 알림음이 아니라 금관 악기의 곧게 퍼지는 소리가 몸을 관통했다. 가장 벌떡 일어나는 것은 유치원 생 막내였다. 잠 귀가 밝은 막내는 정말 0.1초 만에 벌떡 일어나 핸드폰 알림음을 껐다. 초등학생 딸과 나 또한 뒤를 이어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무색하게 일주일이 넘도록 기상 미션은 실패 없이 순항을 하고 있다. 다만, 늦은 시간 잠이 들고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이라 시간이 갈수록 알람을 끄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나의 변화다.


나 역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싶다. 하지만 아이와 다퉜던 지난날의 전쟁통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지 않다. 어나서 고양이 자세로 스트레칭을 하고 앉아 있는 쪽을 택한다. 날씨도 우리를 돕는지 외풍이 부는 한 겨울이 아닌지라 전지장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궁극적으로 자발적인 기상을 꿈꾸지만 그들 옆에서 올바른 관리를 수행하기 위해 먼저 일어나야 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기로 했다.


군대 나팔 기상으로 아침 시간에 많은 변화가 있다. 여유로운 아침식사, 자발적인 가방 챙기기 그리고 이불이 개어진 거실을 뒤로하고 등굣길을 나선다.


윌리엄 H. 맥레이븐의 <침대부터 정리하라>에서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침대부터 정리하라!'라고 했다.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아이들을 등원시키다 보면 거실에 펼쳐 놓은 이불을 정리하는 건 뒤로 밀리게 된다. 일어나서 개지 않은 이불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하루 종이 펼쳐진 상태로 어질러져 있고 집을 치우는 일 또한 생각할 수 없다. 마쓰다 미쓰히로의 <청소력>에서 말하듯 청소를 하지 않 불행 에너지가 쌓이는 악순환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군대 나팔 소리를 듣고 기상하는 일은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살림을 해나가는 나에게 필요한 작은 성공이었다. 자고 일어난 후 침구를 정리하면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는 보상처럼 살림을 해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이제는 7시 30분 알람이 울리기 전 20분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서 일상이 변화되고 있다. 군대 나팔 소리를 듣지 않고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작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여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아이들과의 등굣길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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