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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Mar 24. 2024

딸의 생일날 울컥한 이유는

하필 딸의 생일이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라 하루 종일 본인 만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딸이었다. 작년에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으면서 올해 생일만큼은 참석자가 아니라 주최자로써 생일을 즐기고 싶어 했다. 간절한 딸의 요청대로 올해는 귀찮은 마음은 접어두고 딸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초대하여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기로 하였다.


마음은 굳게 먹었지만 행동이 실행으로 옮겨지는데 버퍼링이 꽤나 오래 걸렸다. 이런저런 핑계들을 일삼으며 손님을 초대하기 위해 집을 치우는 행위에 열의를 올리지 못했다. 가마솥에 물이 팔팔 끓기 위해 무쇠솥이 오랜 시간 달궈지듯 살림을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에 불쏘시개를 넣는 중이었다.


하루 이틀 미루면서 설거지와 빨래는 또 쌓여만 갔다.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한 번에 하면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1층만 점령하고 있었던 개수대에 2층 3층 설거지 탑이 쌓였다. 몰아서 할 때 힘들지 않겠다며 애벌로 물로 헹궈 그릇을 쌓아뒀더니 집에 있는 식기가 모두 나왔다.  빨래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할 거라면 한 번에 하겠다는 미루기 심보로 건조기를 세 번 거친 빨래가 왕릉처럼 높게 쌓여 버렸다.


하필 금요일에는 병원 투어를 오전부터 했다. 손님을 초대하고 집을 치우기 위한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다음날 생일 파티를 위한 파티 용품 준비 및 음식들을 사는 일도 잊지 않았다. 급할 것 없는 여유로운 마음 때문인 건지 하루 전에 준비해도 된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외줄 타기 하듯 딸의 생일 파티 준비를 이어갔다.


하루 온종일 엉덩이 붙일 틈 없이 돌아다녔지만 밤이 되었다고 해서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딸의 친구들을 초대했으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림에 박차를 가했다. 새벽 1시가 넘어 개어 놓은 빨래들을 재자리에 넣고 기절하듯 이불로 다이빙했다.


대망의 토요일, 딸의 생일이 되었다. 준비했던 풍선을 불어 벽을 장식했다. 포토존을 화려하게 꾸미고 아이들을 위한 과일 꼬치를 끼우는 등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으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혼자서는 감당되지 않았을 일이었다. 실행에 옮기는 것은 비록 전 날이었지만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던 생일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즉흥적인 성격이 더해져 기존에 만들어 놨던 인형들까지 곁들이로 꾸며 놓으니 꽤 그럴싸한 초등 여아 생일파티가 준비되었다.



생일 파티에 온 엄마들과 친구들은 준비된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준비하느라 정말 힘들었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파티 준비는 즐거웠어요. 밀린 살림이 힘들 뿐이었죠"라고 대답했다.


격한 주변의 반응에 힘들었던 일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이 상황이 곱씹을 정도로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결국 또 나에게 맴도는 질문은 하나였다.


"나는 왜 살림을 계속 미루는 것인가?"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하면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서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있다. 깨진 유리창이 있으면 주인이 없다는 생각으로 하나 둘 물건을 훔치기 시작하고 이런 범죄가 그 주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깨진 유리창이 개수대이고 건조기 앞이다. 해 놓지 않은 설거지가 있으면 '하나 더 놓는다고 뭐가 달리지겠어?'라는 생각으로 깨진 유리창이 있는 지역의 범죄율처럼 해야 할 그릇의 수가 복리처럼 증가한다.


게으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하는데, 살림을 미루는 나에게 들어맞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완벽하게 한 번에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완벽하게 나를 속인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으면 그곳은 암암리에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곳으로 인식된다. 알게 모르게 길을 가다 쓰레기 통이 없으면 으레 손에 쥔 쓰레기를 버릴 곳을 찾지 못하면, 그곳이 마땅한 곳이 된다. 개수대에 설거지가 마치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딸의 생일 직후에 개수대는 깨끗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시 원점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가 우리 집에 방문했던 날, 친구는 급한 설거지라도 해주겠다며 그릇을 닦아 주었다. 워낙 자매처럼 지내지만 오랜만에 놀러 와서 친구집 설거지라니 '괜찮아 그만해'라고 만류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네가 이따 편해'라면서 거품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에 하면 되지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일부를 해 놓는 게 설거지로 모래성 쌓지 않는 길이었다.


이렇게 결심하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나가는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라도 없게 하려는 마음으로 개수대에 그릇이 없도록 노력 중이다. 비록 하나 둘 쌓일지라도 '한 번에 완벽하게 해야지'라면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위험에 이르지 않겠다.


딸의 생일 파티에 살림 때문에 울컥하다니. 그것도 딸을 낳았을 때를 회상하며 올라오는 벅찬 마음이 아니라 살림 때문이라는 생각에 한번 더 울컥한다. 이제 깨진 유리창을 새것으로 갈고 금도 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쓴 대로 이뤄지는 마법 같은 기적을 실천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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