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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May 14. 2024

오늘도 설거지를 쌓아둔 채 글을 쓰는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이루고 싶은 소망을 담아 계획을 세우곤 한다. 지구별에 사는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지인들과 이루고 싶은  이야기했고 벌써 초록으로 가득 찬 5월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거창한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가능한 경계선에서 조금 높은 수준으로 목표를 설정했다. 오늘 마시멜로우를 참으면 두 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품으며 실현 가능한 마시멜로들을 선반 위에 올렸다. 목표를 이루는 순간에는 두 배의 달콤함이 되어 돌아올 것을 알기에 가능하지만 기존과 달라질 수 있는 한계치에 나를 두었다.


신년 목표 중에 하나는 글 쓰기 목차를 정해 쓰고 연말까지 출판사에 제안해 보는 것이었다. 어쩌면 출판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글쓰기에 새로운 바람을 넣어 보는 것이 목표였다.


해마다 글쓰기에 변화가 불었다. 동화작가 리하님과의 <내 인생의 글쓰기>를 시작으로 내곡 도서관에서 했던 <길 위의 인문학>, 그림일기를 함께 쓴 메이트들과 <뻔한 인생에서 숨은 나 찾기> 공저 출간을 했다.


바느질을 한 땀 한 땀 하듯 나에 관한 글을 한 자 한 자 면서 근심이 한 뼘씩 덜어지는 것 같은 개운함을 얻었다. 글을 쓰며 나와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지친 나를 달래기도 했고 쓰러진 나를 일으키며 계속 써왔다. 


브런치 스토리는 좋은 반짇고리가 돼주었다. 조각난 천같이 흩어진 조각들을 이어 줄 수 있게 해주는 실과 바늘이 되어 목차를 정하고 한 가지 주제로 글쓰기가 힘든 나를 도왔다. 조각들을 정렬하고 한 땀 한 땀 기어오르기 위한 브러치 스토리의 연재 방식은 바느질을 안내해 주는 초크펜이었다.


물론 비계획형 인간에게는 시침질이 있어도 제 길을 찾아가기 힘들다. 잘 정해둔 목차를 두고도 기분에 따라 제목이 바뀌고 제 날짜에 연재하지 못하는 걸 보면 삐뚤빼뚤 내 바느질과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내부까지 꼼꼼한 바느질은 아니더라도 포기해서 너덜거리는 천으로 남지 않고 마침표를 찍은 나의 글은 엉성하게 만들어진 봉재인형이다. 천을 뒤집어 보면 보이지 않은 인형이 재봉사의 바느질인지 초보자의 바느질인지 알게 모람. 중요한 건 매듭을 맺고 가위를 잘라냈기에 인형의 눈을 달 수 있는 것처럼 마침표를 찍어 완성한 초고가 있기에 편집이 이뤄진 완성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를 응시하며 꿰는 바느질을 하듯 고민하는 살림이라는 주제를 바라보며 통찰한 느낌들이 마무리되었다.


비록 나의 살림은 개선되지 않았다.


여전히 살림은 쌓여있고 건조기를 나와 개지 못한 빨래가 산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근심덩어리처럼 느껴져 막막한던 일들이 털어 버리면 되는 먼지로 다가왔다.


이까짓 것 금세 할 수 있어.


피사의 탑처럼 쌓기만 하던 설거지는 애벌 하여 그릇 별로 정리하고 씻으니 자리도 덜 차지하고 수월해졌다. 건조기에서 꺼내지 않고 개지 않는 빨래는 하루에 몰아 오디오 북을 들으며 개니 버려지는 시간이기보다 일석 이조를 누리는 찬스가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 베란다 청소와 세탁조 청소를 한 덕분에 세탁 후 빨래에서 개운한 향이 났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회전하지 않는 롤을 사용해 왔으나 청소기롤 교체 후 바닥 청소가 즐겁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브런치 스토리 연재북의 효과는 탁월했다. 비록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어 퍼져 나가는 효과는 적었을지언정 나를 바꾸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살림이 죽기보다 싫은 누군가가 있다면 혹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직면했다면 글씨를 해보는 건 어떠냐고 넌지시 건네어보고 싶다.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데 이만한 도구가 없으니, 여전히 나는 설거지를 쌓아둔 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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