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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를 바라보는 엄마가 되길

by 친절한금금

여름 방학은 왜 이리 짧은 걸까. 한 달밖에 되지 않는 방학 기간 중 일주일은 부산에 있는 시댁에서 보내고, 남은 3주는 아이들과 아침 운동을 하며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다.

문득 지난겨울 방학이 떠올랐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2학년 딸아이의 겨울 방학은 단, 글자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롤러"


힘들고 뭉그러진 기억이지만 늘어지지 않고 올인해서 무언가를 했었다는 게 묘한 그리움을 주었다.


겨울 방학을 시작하기 전 우연히 찾은 롤러장이었다. 위험할까 봐 가지 않았던 그곳에서 아이가 죽순이처럼 지낼 줄이야. 처음 타는 롤러를 첫째는 곧잘 탔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던 남편이 롤러 강습 현수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학 동안 특별히 할 없으면 롤러 배워보는 건 어때?'


방학 동안 박물관이나 공연을 보거나 책도 많이 읽고 싶었는데 롤러를 배우겠냐는 말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롤러 대회를 나갈 것도 아니고 어디 써먹을 것도 없는 것을 배워서 무엇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이가 좋아했다.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오색빛 조명이 흥을 돋우는 롤러장은 아이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롤러 강습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앞으로 타는 걸 하루 만에 배우더니 뒤로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앞으로 금방 탔으니 뒤로 하는 것도 진도가 금방 나갈 줄 알았는데 방학이 끝나갈 때까지 새로운 진도는 없었다. 다음 스텝을 나가려면 롤러가 신발처럼 느껴질 만큼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이미 들은 설명에도 선생님을 붙잡고 번번이 물어봤다.


"다음 진도는 언제 나가나요?"

"완전히 뒤를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다음 진도를 나가려면 시간이 꽤 필요해요. 아마 다음 여름 방학쯤이면 가능할 것 같아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매일 나와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왜 내년 여름 방학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이번 겨울 방학으로 끝나지 않는다니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선생님이 일대일로 봐주면 좋을 텐데. 단체 강습이다 보니 잠깐 수업하고 몇 바퀴 돌고 오다 보면 이미 수업시간은 끝나있었다.


결국 겨울방학 동안 롤러장에서 강습은 끝이 났다. 우리는 실외용 롤러를 사서 밖에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선생님의 지도하에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며 아이와 날 선 신경전만 벌이다 몇 개월이 지났다.


롤러 선생님이 말하던 여름 방학이 왔다.


나아지는 것 없이 반복되는 연습에 지쳐할 때쯤 남편이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남편은 방학 동안 아이가 롤러를 탔던 7주 동안의 영상들을 편집하여 3분짜리 노래에 담아냈다. 앞으로 가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아이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더니 뒤로 타기 시작했다. 잠깐잠깐 뒤를 확인하면 롤러를 타던 아이가 자연스럽게 뒤를 바라보며 롤러를 타고 있었다.


매일매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어제와 다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급함이 앞서고 먼저 경험해 봤다는 이유로 나만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지 못했다.


'언제 다돼?'

'이제 다 할 때도 됐잖아?'

'아직도 안 됐어?'


나비도 번데기에서 나오려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를 키워나가야 하는데, 미리 앞선 엄마는 고치 속에 대고 끊임없이 외쳤다.


그림책 <참을성 없는 애벌레>를 보면, 나비가 되기 위한 애벌레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비는 애벌레가 고치가 되기 위해 긴 시간을 버텨야 아름다운 날개를 펼칠 수 있다. 참을성 없이 섣불리 나온다면 비상하지 못하고 땅으로 다이빙할 수밖에 없다.


참을성이 없는 애벌레는 매일 물어본다.

'나 아직 나비 아니야?'

옆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 참고 기다리는 고치 속 애벌레가 말한다.

'아니야 참고 기다리라고!'


나는 참을성 없는 엄마였다. 고치를 뚫고 어서 나비처럼 날아가기를 바라며, 고치 옆에서 다그치는 조급함 덩어리.


아이에게 시간을 주자.

고치를 밀어내는 격렬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엄마의 잣대로 아이를 보채고 떠먹여 주기 식으로 키우다 보면 화려한 날개를 등에 진 날지 못하는 나비가 될 뿐이다. 꾸준히 자신의 역량아래 하고 있다면 기다리자. 그리고 가만히 바라보자. 번데기를 벗어 날아오를 나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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