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8.
말이 안 됐지. 몇십 년을 다른 세계관에서 살던 두 사람이, 그저 몇 초 눈이 마주쳤다고, 그 사람을 사랑할 결심까지 했다는 게.
-도영이 맞지?
-어, 하이.
지원이가 다가왔다. 복숭아 향이 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았던 체구. 봄이긴 하네.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마음이 몽글몽글한 걸 보니 정말 그렇네.
-너 번호 좀 주라. 선생님이 단톡방 만들라고 하셔서.
-아, 응.
-앞으로 잘 부탁해!
-응응, 나도.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나에겐, 사랑은 결심까지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심을 하는 건 새해맞이 다이어트 계획이나, 금연같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