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44.
엄마의 바람은 놀랍게도 며칠 뒤에 이루어졌다.
그날은 우유 가장 많이 마시기 도전을 했던 날이었다. 물론 3등을 해버렸던 탓에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패잔병처럼 교실로 돌아오던 참이었는데, 마침 도호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채 앉아있었다. 분명 저기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나와는 다르게 특별한 도호에게 시샘이 났다. 분위기를 망칠 못난 마음이었다.
-이번엔 내 차례야.
-넌 저번에 해줬잖아.
-이번 것도 해준다고 했어. 너는 다음에 맡겨.
대화의 내용이 들릴만큼 가까이 왔을 땐, 도호의 표정이 보였다. 개미. 맞아, 그때 개미를 봤을 때 지었던 표정이었다. 도호가 날 보고 소심하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너 오래.
도호가 자신을 가리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급한 일인가 봐. 빨리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이럴 마음이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아니야.
-어?
-애들이 너한테 숙제 맡겨?
-응, 가끔.
-너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또 말 안 한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말을 해야지. 왜 말을 안 해.
-엄마가 나는 다른 애들이랑 달라서, 도와주고 양보해야 된다고 했어.
-바보야, 숙제 대신 해주는 게 도와주는 거냐.
도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했으니까.
-다음부터는 하기 싫다고 말해.
-못하겠어.
-말을 못 하겠으면, 고개라도 저어.
- ···응
-너도 힘들구나. 혹시 숙제 맡기는 거 말고 또 괴롭히는 거 있어?
- ···아니
-답답해 죽겠네. 그런 거야 안 그런 거야.
도호보다 못났다는 열등감이었을까 되려 불쌍하다는 동정심이었을까. 왜 나는 이때 도호에게 잔뜩 화가 나 있었을까.
-나는 싸우려고 한 적이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나를 이기려고 해. 그것뿐이야. 괴롭힌 적은 없어.
-너가 잘 나서 그래. 너 공부 엄청 잘한다며?
-응, 조금 잘 하긴 해.
-보통은 아니라고 하지 않니.
안녕하세요. 바람이 많이 부는 밤입니다.
오늘 추천드릴 곡은
Ye-530입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온한 하루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