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borN

나와 하연

by 평일
순애 브런치.png

51.

우리 학교는 일주일에 한 반씩 돌아가면서 급식 당번을 맡곤 했다. 우리 반은 그다음 순서였고, 대부분 학생들은 급식 당번 맡기를 꺼려했다.

- 이번에 우리, 급식 당번 반인 거 알지? 혹시 자원 있나? 없지? 그냥 바로 뽑는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짝꿍이 손을 모은 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아니, 벌써 우리 반 차례라고? 진짜··· 제발··· 씨발··· 제발···

- 나 할래.

- 뭐야. 이걸 한다고?

짝꿍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 미쳤어? 너 저번에도 한 번 했잖아.

- 나는 재밌던데.

- 별게 다 재밌네. 아, 살짝 고통을 즐기는 타입?

짝꿍이 눈썹을 씰룩거리며, 음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 자원 더 없지? 나머지 4명은 뽑기 돌린다?

회장이 클릭을 한 번 할 때마다, 구석구석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 마지막 한 명 뽑는다. 자리 뭐 남았지? 배식은 끝났고··· 청소 남았네.

회장의 말에 친구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기도를 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짝꿍 같은 경우에는, 두 쪽 다인 경우였다. 반장이 버튼을 누르고, 한 차례 조용한 순간이 찾아왔다. 곧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이 소리를 들은, 짝꿍은 모았던 손을 풀고, 슬며시 눈을 떴다.

- 제발··· 제발··· 씨발··· 진짜.

- 그런 걸로, 기도를 왜 하냐? 내가 신이었어도, 급식 당번 빼달라는 기도는 안 들어주겠다.


52.

할매가 없는 집은,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그렇게 느낄 만도 했지. 평소에 할매는 입버릇처럼 혼잣말을 많이 하곤 했으니까. 뉴스에 나오는, 이름 모를 대머리 정치인을 욕할 때나, 좋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 당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할 때, 청소를 할 때, 군데군데에서.

하지만 정작 그리웠던 건, 할매의 혼잣말이 아니라, 혼잣말을 할 때, 뒤따라오는 소리들이 그랬다. 나 혼자서는 볼일 없는 뉴스 소리와, 요리를 할 때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 양치하는 소리, 코를 고는 소리같이.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마땅히 들려야 할 '사람 소리'들이 우리 집에선 좀처럼 날 일이 없었다. 아주 새벽이 되면, 아버지가 집에 들어왔다. 할매가 내는 소리가 집에서 사라진 순간부터,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날 때면, 나는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유독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일정치 않았고, 어딘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잇달아 해대는 아버지의 소리에, 아버지가 거하게 취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내 문 앞에서 멈췄다. 방 문이 열렸다. 오늘은 자는 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떤 감정을 업고, 어떤 말들을 입에 담아왔을까에 대한 생각이 들기 전에, 내 입이 먼저 움직였다.

- 아버지, 집에 가정부 좀 고용해 주세요. 돈 많으시잖아요. 저번에 할머니 봐주시던 그분 일 잘하시던데, 그분으로요.

아버지는 얼큰하게 취한 붉은 눈으로 날 가만히 바라봤고, 나는 하던 말을 이어갔다.

-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아버지는, 아버지가 할 도리를 다 하고 있으시다고요. 저한테도 아버지 노릇 좀 해 주세요. 크게 어렵지 않으시잖아요.

- ···그래.

아버지는 짧은 대답만을 남기고, 내 방을 떠났다.

그다음 날부터, 한 집 안에 아버지의 공간과 나의 공간이 조금 더 분명히 나뉘기 시작했고, 그다음 주부터는 할매를 돌보시던 분이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그나마 배운 게 있다면, 일어날 일들은 기어코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

의도했다고, 탄을 얻었던 게 아니었던 것처럼. 기도했다고 할매가 영영 내 옆을 지킬 수 있던 게 아니었던 것처럼.


53.

날이 사뭇 더워졌다고 느낄 때쯤, 하연과는 감정의 교류 없이, 더욱 깊고 깔끔한 파트너 사이가 되었다. 너는 내가 써 준 원고를 열심히 잘 읽었고. 나는 너가 읽을 원고를 열심히, 그리고 잘 써주었다. 이맘때쯤에서부터 방송부에서 진행하는 아침 라디오가 인기가 많아졌고, 덩달아 하연의 인기가 많아졌다.

여담이지만, 내 삶에서 커다란 일들은, 보통 여름에 찾아왔다. 엄마가 날 떠났던 우중충했던 여름, 까칠한 할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왔던 매미가 시끄럽게 울던 여름을 거쳐, 정아와 연애를 시작했던 여름의 끝자락, 담배 연기 자욱한 골목의 여름까지.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레 모기가 슬슬 보이는 시기가 찾아오면, 나도 모르게 은근한 기대와 긴장을 하곤 한다.

이번 여름은 탄을 만났기에, 기대하길 정말 잘했단 생각을 했고 이번 여름 이벤트는 모두 끝이 났겠거니 안심했더랬다.


내가 하는 예상은 언제나 시원하게 빗나가지만,


54.

동복 셔츠를 걷어입기에도 더운 날씨에서, 방송부 친구들은 나와 하연의 사이에 대해서 넌지시 물어오기 시작했다.

- 너 얼음이랑 싸웠냐?

- 아니? 전혀? 왜?

- 아니 그냥··· 뭔가 서로 말도 잘 안 하고 하는 거 같아서.

- 원래 하연이가 말이 좀 없잖아.

- 그치? 얼음이가 사람은 좋아도, 먼저 막 나서서, 말을 거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

- 아무래도 그렇지.

- 아, 조금 있으면 하연이 생일이래.

- 걔 생일이 여름이었나··· 뭔가 의외네.

- 언젠데?

- 다다음 주? 뭐 준비해야 되지.

- 나중에 얘기해 보지 뭐.

- 사이좋게 지내,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 걔랑 나랑 사이좋아. 아침 방송 인기 엄청 좋잖아.

- 그래서, 너네 둘은 더 싸우면 안 되는 거야. 방송부 얼굴이니까.

- 엄밀히 말하면 얼굴은 하연이 혼자지. 다른 사람들은 내 존재도 모를걸?

- 아니던데. 은근히 너네 사귀는 사인 줄 아는 사람들도 꽤 있던데.

- 너 방금 나한테 걔랑 싸웠냐고 물어봤잖아.

- 그랬지.

- 걔랑 나랑 뭘 했다고 사겨?

- 혐오?

- 나 걔 혐오해?

- 너는 몰라도, 걔는 할 수도 있지.

- 근데, 나랑 걔랑은 왜 사겨?

- 혐관이라는 말 몰라?

- 혐관? 뭐야 그게.

- 혐오 관계. 근데 이제 혐오 관곈데··· 이게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엮이면서 혐오 관계 속에서 서로가 좋아지는···

- 그거 되게 징그럽다. 그런 병든 관계는 내 취향은 아니라.

- 너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방실방실 웃어.

- 아니 그냥~ 근데 생각해 보니까, 되게 클리셰틱 하지 않냐

- 그건 서로 혐오해야 성립하는 관계 아니야? 이쪽은 일방적 혐오 같은데.

- 아니지, 아니지. 진짜 맛있는 건, 한쪽은 끊임없이 혐오하고, 한쪽은 끊임없이 엉겨 붙다가 혐오하던 쪽 마음이 천천히 열리는 거야. 그래서 어? 내가 왜 이런 마음이 들지? 할 때

- 이제 엉겨 붙던 쪽 마음이 조금 떠버린 거지. 그제서야 혐오하던 쪽은 다급해지고···

- 너 음침하다.

-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날 바라 봐주지 않으니까.

- ···

- 준우야 넌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랑 꼭 결혼까지 해. 꼭이야. 그게 너 마지막 기회일 거 같아서 그래.


55.

하연의 생일 축하는 점심을 먹고 난 뒤, 갑작스레 기계가 망가진 비상상황이라는 빌미로 방송실에 불러낸 후 진행을 할 예정이었다. 진부한 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토를 달 마음은 없었다.

- 얼음이한테 말 한 사람 없지?

- 준우, 케이크 준비했지?

- 어, 방송실에 놨어.

- 케이크 안 녹으려나. 날이 더워서.

- 에어컨 틀어 놓고 나왔지.

- 오케이.

- 야··· 나 진짜 미안한데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같이 못 있을 거 같은데

- 갑자기?

- 그러니까, 머리가 갑자기 아프네. 진짜 미안. 케이크 누가 샀어?

- 내가 샀지.

- 케이크 내가 살게. 준우, 계좌 좀.

- 어··· 뭐 아픈데 어떡하냐··· 계좌는 됐어. 그냥 나눠서 사지 뭐.

- 아니야, 내가 살게. 하연이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좀 전해줘.

- 어쩔 수 없지··· 가서 쉬어라. 하연이한테는 케이크 너가 샀다고 말할게.

반으로 가서는 잠시 칠판을 멍하게 바라보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병원에 들러서 처방전을 떼고, 집 현관에 들어서니 눈앞이 빙글 돌았다. 아마 바로 잠에 들었다가, 배가 고파서 깼었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던 탓에 깨버렸나,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눈을 떴을 땐, 역시 타코야끼가 먹고 싶었다.

좋아하는 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무인도에 갇혔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을 세 가지만 고르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고를 수 있는 세 가지 정도는 있다.

그중, 가장 첫 번째가 타코야끼였다. 누군가는 멍청한 선택이라고 말하겠지만, 마음껏 그렇게 생각하라지. 나는 타코야끼를 맛있게 먹어치우고, 유서도 없이 굶어 죽어버릴 테다. 특히 우리 집 앞 가게 앞에서 파는 가쓰오부시가 잔뜩 올라가 있는 치즈 타코야끼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럼 그렇고말고.

가정부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3일 정도 출근을 하셨다. 출근을 하시는 날이면, 저녁을 차려두고 퇴근을 하시지만, 아닌 날은 저녁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집 앞으로 치즈 타코야끼를 먹으러 갔다.

- 저, 손님 죄송한데, 지금 주문이 좀 밀려서요··· 한 30분 정도는 걸릴 거 같은데, 혹시 괜찮으신가요?

- 그럼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타코야끼를 기다릴 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향긋한 버터향과, 구워지는 반죽 냄새를 맡아야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미 알고 있는 맛을 상상한다. 이건 타코야끼를 먹기 전에 언제나 하는 일종의 나만의 의식이었다.

- 어서 오세요.

의식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참에, 가게 문이 열렸다. 이어서 키오스크와 손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적잖이 거슬리는 소리였기에,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인상을 쓴 채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겼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키오스크를 공격적으로 누르고 있던 손톱이었고, 그다음엔 가느다란 손가락, 손가락을 타고 올라간 곳엔, 하얗고 얇은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되게 예쁜 손목이란 생각을 했다. 시선이 손목에서 팔을 타고, 얼굴까지로 올라갔다. 하연이 서 있었다.

- 어?

급하게 에어팟을 끼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가장 맨 위에 뜨는 동영상을 재생했다. 하연이 주문을 마치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혁오-New born] 이라는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하연이 내 왼쪽에 앉았다. 온 신경이 왼쪽에 쏠렸다. 어깨가 뾰족한 것에 찔렸다. 몰려있던 신경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 어? 뭐야.

- 안녕.

- 어, 안녕.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다시 에어팟을 끼려던 차에, 하연이 내가 말을 걸었다.

- 케이크 잘 먹었어. 고마워.

- 아, 잘 먹었으면 다행이다. 생일 축하해.

- 몸은 괜찮아?

- 응 그럭저럭.

- 너, 거짓말 되게 못하네.


56.

얼마 전 과학시간에는, 드라이아이스에 대한 내용을 공부했다.

졸면서 들었기 때문에, 수업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드라이아이스’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예전에 드라이아이스를 가지고 놀다가 생긴, 왼쪽 팔의 흉터가 쿡쿡 쑤시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었을 통증은, 곧바로 여러 가지 생각들로 바뀌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가지고 놀았던 건 분명 '얼음'이었는데, 어째서 데인 듯한 열상을 입었는지였고, 곧바로 이어서 든 생각은 평소에 방송부 친구들이 '얼음'이라고 불렀던 하연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번에 하연이 날 안았을 때, 온몸에 남기고 간, 뭔지 모를 일종의 데인 듯한 같은 감정들 그리고 장면들.

그건 종종 느껴봤었던, 끈적한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마 내가 느꼈던, 끈적한 느낌은 흔히들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이었겠지. 하지만 하연이 남기고 간 것들은 도무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쪽에 가까웠다.

정확한 진단을 내려줄 의사가 있었으면 했다. 열상인지 동상인지, 하다못해 외상후스트레스성열상이나 근원적트라우마성통증같이 말도 안 되는 병명이라도. 무언가 확실한 게 필요했다.


57.

너는 얼음보다도, 과학시간에 배웠던 드라이아이스와 조금 더 닮은 듯하다.

얼음보다 조금 더 차갑게 생긴 외모와, 드라이아스같이 쌀쌀맞게 구는 것까지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하연에게, 우연치 않게 한 번씩 맞닿아 있을 때면, 어딘가 낯설고 이상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차가운 얼음에 화상을 입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무언가를. 내가 피하고 싶었던 건, 하연이 아니라 내가 느꼈던 이러한 이질적인 감정들이었다.

- 노래 들어?

하연이 내 핸드폰을 얼핏 보고 물었다.

- 응. 혁오 New born 알아?

- 오~

- 아는 노래야?

-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난 힙합만 들어.

- 아··· 그렇구나

- 128번 손님. 주문하신 치즈 타코야끼 여섯 알 드리겠습니다.

- 어, 내 거 나왔다.

하연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하연에게 손을 흔들었다. 타코야끼를 받아,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땐, 비가 그쳐 있었다. 겉옷을 챙겨 왔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코야끼 한 알을 입에 집어넣었다. 곧바로 타코야끼 한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세 번째 타코야끼 위로 꼬챙이를 빙빙 돌리다,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 혹시 어떤 타코야끼 주문했어?

하연이 날 올려다봤다.

- 어, 나 오리지널 주문했는데?

- 이거 먹어. 여기는 치즈 타코야끼가 맛있어.

- 갑자기?

- 응, 사실은 밖에서 두 알 먹었는데, 배불러서 다 못 먹을 거 같아서. 나는 아까 밥 먹었거든.

- 어··· 그래. 뭐, 주면 맛있게 잘 먹을게.

- 그리고, 생일 축하해.

하연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받은 타코야끼 박스를 들어 중지와 검지를 치켜 세웠다. 그 어색한 미소가 집에 오는 내내 생각났다. 아니 잠에 들기 전까지도, 아침에 일어나서 멍한 와중에도.


58.

- 안녕.

- 어, 안녕.

- 타코···

- 타코야끼 맛있었어?

- 응, 맛있던데? 근데 우리 엄마 에스카르고가 좀 더 맛있긴 하더라.

- 오, 나도 에스카르고 좋아하는데.

- 나중에 만들면, 좀 싸줄까?

- 어··· 아니, 그건 괜찮아···

- 엄마가 들으며 섭섭해하겠다···

- 그럼 조금만.

- 농담이야, 농담.

하연이 씩 웃었다. 나에게 하연이 처음 웃었다.

- 안 웃긴가?

- 농담···이지?

- 응 농담. 근데 타코야끼 맛있었다는 건 진심.

- 그치. 완전 맛있지.

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나 거기 매주 화, 목이랑 주말 저녁에 항상 가.

- 매주?

- 응응.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오늘 저녁에도 가겠네.

- 가게에 지분 있어?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 근데 왜 그렇게 자주 가?

- 타코야끼 좋아해서.

- 맛있긴 하더라. 또 먹고 싶네.

- 오늘 저녁에 와. 나 또 먹으러 갈 거야.

- 오늘은 말고 다음 주쯤 먹어야지. 좋아한다고 많이 먹으면 금방 질려.

- 그럼 다음 주에 같이 먹자.

- 그래, 그럼.

- 아, 나 너 번호 좀 주라.

- 내 번호 없었어?

- 너가 알려준 적이 없었으니까?

- 그건 그렇네.


59.

그 일이 있고 나서, 알게 모르게 나는 하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는 하연의 손을, 잘 정리되어 있는 손톱을, 말을 할 때 미세하게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그럴 때 얼핏 보이는 목선을, 아침 방송을 할 때의 옆모습을, 달아오른 기름에 옥수수를 넣었을 때처럼 톡 하고 웃음이 터질 때를, 이해하기 힘든 코드의 유머를 던질 때를, 던진 유머에 아무도 웃지 않았을 때 무안해하는 표정과, 누군가 웃었다면 퍽 만족해하는 표정을

이건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이었지, 관심은 아니었다.


60.

- [학원 끝났어?]

- [응, 방금]

- [먹을 거야?]

- [어 배고파]

- [언제쯤 와?]

- [한 15분 정도 걸릴 거 같은데]

- [주문해 놓을까?]

- [그럼 고맙지.]

- [어떤 거?]

- [치즈 타코야끼로 6개 부탁할게.]

- [응.]

그렇지. 역시, 치즈 타코야끼가 최고지.

- [나왔는데, 어디쯤이야?]

문자를 보낸 직후, 앞을 바라봤을 땐, 하연이 문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뭐야, 언제 왔어?

- 너 가게 나와서, 나한테 문자 보냈을 즈음에?

- 어디서 먹을래?

- 공원 갈까? 거기 정자도 있잖아.

- 좋네.

- 너는 뭐 주문했어?

- 나도 치즈타코야끼 6개.

- 좋네.

- 좋다.


61.

- 그러니까 이게 무슨 감정이냐는 거죠.

- 무슨 감정이냐니. 좋아하는 거지.

탄이 말했다.

- 내가 사람을?

- 아무래도 사람이지?

- 근데 저는 그런 거 해 본 적 없는데요···

- 뭐야, 너 연애 한 번도 안 해봤냐? 그리고 말 좀 제발 놔주면 안 되냐. 오글거려 죽을 거 같은데.

- 연애는 한 번 해 봤죠.

- 근데 뭘 안 해 봐.

- 어··· 뭔가 묘하게 다른 느낌인 거 같아서요.

- 사랑이네. 사랑이랑 호감은 다른 감정이지.

-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 어딘가 툭툭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게 있단 말이죠.

- 무슨 트라우마?

- 저번에 말한 거 있잖아요. 그 엄마···

- 걔가 엄마랑 겹쳐 보이고 그래?

- 아뇨, 그건 오히려 전에 연애했던 여자애가 그랬어요. 그래서 헤어졌죠 걔랑은

- 왜 헤어졌는데?

- 그냥 좀 그렇잖아요. 저한테 못되게 군 건 아니었어요. 따지고 보면 오히려 그 반대였는데.

- 잘해주지 그랬냐.

- 잘해 줬어요. 꽤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 그랬냐.

- 어··· 되게 따뜻한 사람이에요.

- 이번에 아니면 전에?

- 이번에요.

- 그럼 잘 된 거 아니야?

- 그 유인원 있잖아요. 엄청 옛날에 살던 사람들. 그 베이프 로고에 있는 고릴라 같은 사람이요.

- 그 사람들,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불을 되게 무서워했대요.

- 그런데?

- 그러다가 적응도 하고, 다룰 줄도 알게 되면서 불이랑 친해진 거죠.

- 그 여자아이가 그래요.

- 원시인 같다고?

- 아니,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탄이 픽 하고 웃었다.

- 분명히 뭔가 나쁜 거 같진 않은데, 처음 느껴보는 거라 무서운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너무 오래 닿아있으면 큰일 날 거 같기도 하구요.

- 적응도 하고, 다룰 줄도 알게 되면서 친해졌다며. 너도 그 사람들처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울까?

- 어, 말 놨다.

- -요

- 까비.

화, 목, 토 연재
이전 08화New-b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