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

by 평일
순애 브런치.png

103. (New Born)

어중간한 혼자가 될 바에는, 되려 철저한 고립을 원했다.

세상에 혼자만 남아서 멸종을 기다리는 양쯔강 대왕자라처럼.


104.

3월이 되고, 서울에 올라가서는 자취방을 구했다. 학교 수업은 빠지지 않고 다 나갔다. 수업이 예상보다 더 재밌었던 탓도 있었지만. 막상 할 게 없어서 그랬다.

수업이 끝나고 남는 시간이나, 공강인 날에는 술을 마시러 다녔다. 술집에는 늘 새로운 사람이 많았고, 새로운 자극도 거기에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술집에 몇 사람은 늘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빠르게 친해졌고, 아니 친해졌고? 친하다는 말을 붙여주기에는 조금 아까운 사람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알게 됐다고 수정하는 편이 좋겠다. 그들 중 몇 명은 나한테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들의 관심을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함께 술을 마시고 난 후면 습관처럼 우리 집으로 향해 자해 같은 사랑을 나눴다.

- 우리 사겨볼까?

- 갑자기?

- 근데, 너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말 놓는다.

- 너 몇 살인데?

- 뭐야··· 말해 줬잖아. 너보다 두 살 많다고.

- 아, 그랬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

- 봐봐, 또 반말한다.

- 그게 중요해?

- 아니 뭐 중요한 건 아니고...

- 그래서 어떡할래.

- 뭘 어떡해.

- 뭘 어떡하냐니.

- 노래 듣는 거 좋아해?

- 그것도 말해 줬었는데. 좋아한다고.

- 뭐를 제일 많이 봐? 뭐 가사를 보는 편이라거나 뭐 그런 거 있잖아.

- 나는 가사 제일 많이 보는 거 같은데.

- 나는 전주. 전주 들을 때, 설레는 기분이 좋아서. 특이하지.

- 그렇네.

- 가끔은 전주만 모아서 듣고 싶을 때도 있다니까.

- 알겠는데, 그게 우리가 하던 대화랑 무슨 상관이야.

- 상관이 아주 있지. 나한테 너는, 노래 전주 같은 거니까.

- 그게 무슨 말이야.

- 너한테는 내용이 없어. 전주 들을 때처럼, 잠깐 설레는 거지. 근데 너도 노래 들을 때, 전주만 듣진 않잖아. 나도 안 그래.

- 미친 새끼.

- 그래, 그래. 아무래도 그렇지.

- 야, 옷 가져가. 혜영아. 아, 혜진이었나.


105.

그랬던 게, 일곱 번째였나, 여덟 번째였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집에는 내가 본 적 없는 물건들이 쌓여 갔다.

칫솔이라던가, 어디에 쓰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화장품이라던가. 1.5/1.5인 내가 쓸 필요가 없는 안경이라던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많았던 보조배터리 같이.

- 뭐야, 이건 왜 두고 간 거야.

라고 말했을 때, 내 손에 들려 있던 건, 게맛살이었다. 누군가 두고 간 게맛살을 까먹으며, 소파에 앉았을 땐,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다.

1학년이 끝나고 나서는 곧장 군대에 갔다. 남들은 가기 싫어서 발악하던 군대를, 나는 비교적 아무렇지 않게 들어갔다. 알았다고 누군가 와 줄 사람은 없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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