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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즈골드 Oct 25. 2020

하루살이? 난 ‘2년살이’ 계약직!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또 열정이 넘쳐 흐르는 시기는 20대 초반이지 않을까 싶다. 내 나이 22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날 꽃다운 나이에 본격적인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내 인생의 첫 회사에 입사를 한 것이다. 당시 나는 세상을, 냉정한 현실을 잘 모르는 철없는 20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 중 한 가지, 첫 직장의 선택을, 미래에 대한 진중한 계획이나 생각 없이, 너무나 쉽게 정해 버린 것 같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진다는 확고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나는, 부모님이나 지인들께 의견을 여쭈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여느때처럼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했다. 그 당시의 나는 출퇴근이 용이한, 집에서 가까운 직장이 최고라고, 집 근처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구직 사이트에서 ‘우리 동네’로 검색하여 집 근처의 회사를 알아보고 입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그렇게 철없이 결정하여 입사한 첫 회사가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금융 회사였다는 것이다. 아직도 입사한 첫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낯선 건물, 낯선 사람들, 낯선 자리.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기만 했던 그 곳. 긴 머리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회사에 출근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머리를 질끈 묶고,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스커트로 깔끔하게 의상을 차려입고, 평소엔 신지도 않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긴장 가득한 상태로 주어진 자리에 앉아있었다.

 팀원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나와 같은 직급의 팀 여자 선배들과는 적게는 4살에서 많게는 10살 정도로 차이가 났다. 그중 한 분, 남자 과장님께서는 어린 친구가 여기 왜 앉아있냐며 놀라셨고, 그 뒤로는 나를 ‘해피밀’이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시 기도 하셨다. 입사 순으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난 막내 중의 막내였다. 그리고 난, 2년간의 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입사한 ‘계약직’이였다.


 ‘계약직’. 일정한 근로기간 및 방식, 임금 따위를 계약을 통하여 약정하고 그 기간 내에만 고용이 지속되는 직위나 직무. 2년(혹은 1년 마다) 계약을 해야 하는 하루살이 같은 ‘2년살이’. 그땐 몰랐다. 세상 참 서러운 단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입사 준비가 어렵더라도,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안정된 정규직으로 취업을 했어야 했음을. 그렇게 나는 ‘계약직’ 인생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입사 초기 나의 주 업무는 마케팅 홍보, 프로모션 지원 이였다. 해당 서비스의 이메일, SMS 발송을 통한 서비스 홍보, 발송대상 DB 관리 및 추출, 콘텐츠 선정, 내용 및 문구 제작, 발송 및 당첨자 선정 및 공지, TM, 경품 발송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더군다나 내가 입사 한 이후에 새로이 오픈된 서비스였기에, 나는 초기 멤버로, 많은 업무들과 많은 시행착오를 감당해야 했다. 팀 내 다른 팀원들은 전혀 다른, 각자 개별적인 다른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도움을 구할 수도, 버거운 업무를 나누어 할 수도 없었다. 나와 같은 파트에서 내 위로 책임자인 과장님 한 분 뿐이었다. 잡무를 비롯하여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오로지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해당 서비스의 대상자는 몇만~몇십 만명이였다. 그 많은 수의 데이터 작업을 해야 했으며, 특히 직접 수작업 해야 하는 경품 발송이나 민원이 제기되는 TM업무는 정말이지 다시 하라면 못하겠다고 거절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고, 늘상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특히 민원처리 업무는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추천하고 싶지 않을 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 담당자인 나와의 전화통화 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곤 하셨다. 22살, 이제 막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겐,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가 남았던 것 같다. 그 외에도 경품 당첨 안내지를 발송할 때면 그 많은 대상자들 수만큼 안내지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고 풀칠을 하고, 수신자 정보를 엑셀 작업하여 라벨지를 붙이는 것까지. 대부분을 나 혼자서 처리해야 했다. 내 지문은 닳고 닳았다. 지금 동사무소에 가서 인감이라도 뗄 때면 지문인식을 해야 하는데, 내 지문은 인식이 되질 않는다. 과거의 그런 많은 작업들로 인한 흔적인가 보다.

업무량이 많아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를 넘기는 일이 대부분이였다. 매일 아침이면 새로운 양의 일들이 쌓였고, 그날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휴식 시간은 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며 아침부터 하루종일 열심히 일했지만, 6시가 넘도록 남아있는 업무의 양이 많았다. 하루에 정해진 주요 업무는 신속하게 모두 처리하였어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민원 처리 업무가 남아있던 것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업무량이 많아 너무 힘들다고 과장님께 말씀을 드리면, 곧 인원을 추가로 채용해 주시겠다고, 조금만 참으라고 말씀하실 뿐 이였다. 22살의 막내인 나는 자리에 앉아, 먼저 퇴근 하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며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집에 가고 싶은데, 아직 할 일이 많았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을 야근을 하며 보낸 것 같다. 경력이 쌓인 지금에 와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꼼꼼한 성격이었던 나는 어느 것 하나 대충하지 못하고 정석대로 일 처리를 해 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업무처리 속도가 늦은 것은 아니였다. 업무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되어 처리 속도는 빨라졌었다. 아마도 서비스 초반이었기에 프로세스가 보다 체계적이지 않았고, 그로인해 좀 더 신속한 업무처리가 불과하지 않았나 싶다. 수익을 내야 하는 팀이었기 때문인지, 업무량은 정말 많았던 것 같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우리 동네’에 일자리를 구한 것이였기에, 회사가 집과 가까워 야근 후 어두운 밤에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아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는 점이다. 다른 팀 친분 있는 언니들을 보면, 일하는 틈틈이 화장실에 가 화장도 하고, 커피도 사 마시러 나가고, 가끔은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나가기도 하던데, 난 맡은 업무상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기에 업무 시간 대부분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일 많은 팀에 들어와, 일 많은 업무를 맡게 되다니, ‘일 복’ 하나는 제대로 타고난 것 같았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팀 내에서 나는 초기 멤버로서, 해당 서비스에 대한 업무 파악을 모두 하고있는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계약직일 뿐이었다. 그 뒤로 새로운 팀원들이 채용되었고, 나는 계속해서 직급이나 나이로 보나 막내일 뿐이었다.

 팀원이 추가로 여러 명 채용되면서, 해당 서비스는 좀 더 체계적으로 자리 잡혀갔다. 내가 처리하던 업무가 세분화되어 각각 전문적인 담당자가 생겼다. 접수되는 민원의 양은 여전히 많았지만, 처리 프로세스가 개선되었고, 민원 처리만을 담당하는 인원이 2명으로 늘었다. 참 힘들었던 2년 이었지만 내가 키운 자식 마냥, 서비스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울컥하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 회사에서 2년을 더 근무할 수 있었다. 먼저 들어왔던 계약직 선배가 퇴사를 하며 나는 팀 내 회계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회계 업무. 복잡하고 어렵기도 했지만, 그제서야 살 것 같았다. 업무하는 틈틈이, 숨 쉴 틈이 많았다. 화장실도 마음 편히 가고, 커피를 사 마시기도 하며 여유있는 직장생활을 드디어 할 수 있었다. 정해진 업무 시간 내에 내게 주어진 업무를 수월히 처리 할 수 있었다. 회계 마감일에 매번 야근을 하더라도 전혀 서러운 마음이 들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한 달 중 몇 안 되는 야근 날을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 사와,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하는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꼼꼼한 성격의 나에게 딱 맞는 업무, 즐기며 할 수 있는 업무. 회계 업무는 나에게 그런 업무였다. 하지만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서, 아직 젊었던 나는, 보다 더 나은 회사, 보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경력을 쌓은 첫 직장은 다른 곳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였음을, 그보다 더 나은 세계를 만난다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일과도 같았음을, 달콤한 미래를 꿈꾸며 박차고 나온 세상은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음을, 보다 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20대 초반의 난 깨닫지 못한 채 첫 직장을 그렇게 퇴사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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