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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즈골드 Oct 26. 2020

첫 아이 임신과 출산, 상상도 못했던 나날들

 결혼하고 약 3개월 뒤,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내 몸의 변화를 감지하고 '임신이구나.' 싶은 느낌이 왔다. 테스트기를 했고, 두 줄이 보였다. 산부인과에 가 임신을 확인했다. 신혼생활을 즐기다 1년 뒤쯤에 아이를 가질 계획을 했던 우리에겐 놀라운 소식이였다. 놀라웠지만 너무나 기뻤다. 더군다나 임신을 확인하며 내 자궁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이 있었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임신이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너무나 다행이였고 감사했다. 하지만 기쁘고 감사한 순간도 잠시, 몸도 마음도,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임신 전의 나쁜 습관들을 고치지 못하고 임신 중에도 잘 챙겨먹지 않았다. 임신 후 대부분 10~20키로 정도 몸무게가 는다고 하던데, 그래서 임당을 걱정한다던데, 나는 만삭일 때 몸무게가 50키로였다. 입덧이 심해 물만 마셔도 구역질을 했기에 무언가를 먹기가 싫었다. 임신 초기부터 시작된 입덧은 만삭이 다 되도록 계속되었다. ‘입덧이 왜 이렇게 오래가지?’ 싶어 병원에 물어보니, 22주 이상은 입덧이 아니란다. 하도 구역질을 심하게 많이 해서, 위가 상해 그렇다고 했다. 그 당시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힘들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뱃속 아기에게 좋다는 태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 같은 허약한 임산부가 직장에 다닌다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입덧이 너무 심해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봉투를 들고 화장실이나 계단으로 뛰쳐가 구역질을 해야 했다. 여러장의 봉투를 필수품처럼 챙기고 다니며 품에 달고 살아야 했다.


 특히 출근길이 너무나 괴로웠다. 임산부이지만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에 앉을 수 없었다. 출근 시간에 노약자석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분들로 늘 만석이였고, 임산부석에도 꼭 누군가 앉아 있었다. 혹 노약자석에 자리가 비어 있다해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한 번은 우연히 노약자석이 비어있어, 속이 울렁거리고 서 있기가 너무 힘들어 앉아 있었는데, 지팡이로 내 다리를 툭툭 치며 화를 내신 어떤 할아버지도 계셨고, 또 한 번은 ‘젊은 사람이 왜 앉아있냐’고 수군 수군 거리는 아주머니분들도 계셨기 때문에, 나는 노약자석에 앉기가 싫었다.


 임산부라도 내 몸만 괜찮다면 서서 가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은 너무나 허약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을만큼 서 있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었고, 무엇보다 울렁거리는 속으로 봉투를 계속 입에 대고 있어야 했기에 미칠 것 같았다. 정말 지옥철이 따로 없었다.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 늘 새벽같이 일어나 일찍 출근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자리는 없었다. 새벽시간, 일찍 출근을 할 때면 서 있는 사람들은 없더라도 앉는 좌석은 꽉 차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아도 어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자고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엔 그러한 현실이 너무나 서러웠던 것 같다.


 매일매일이 그랬다. 매일매일 길고 긴 정거장을 지나도록 내내 서서 가야 했다. 쓰러질 것 같을 때는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다. 출퇴근 길이 너무 힘들어서였다. 그때는 계약직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할 정도였다.

 출퇴근 길에 마음편히 앉아 갈 수 있는 자리 하나면 버틸 수 있었을 것 같다. 임신을 경험하기 전에는 나 역시 몰랐을 상황들. 임신을 하고 나서 직접 경험해보니 임산부들의 고충이 깊이 와 닿았다. 젊은 아가씨 뿐만 아니라 임산부석에 앉아 계시는 남자분들도 종종 계셨는데, 이런 현실이 참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버티고 버티다 만삭에 가까워 졌을 때 퇴사를 했기에, 퇴사 후 얼마 안 지나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내 인생에서 결혼 이후의 일생일대의 사건. 너무나 축복할 일이고 감사한 일. 내가 작고 작은 한 생명체인 아이를 낳았다는 신비롭고 경이롭고, 감사하고 행복한 일.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 우리 가족. 앞으로 행복하고 즐겁게만 살고 싶은 달콤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임신은 앞으로 펼쳐질 고된 길의 그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출산 후,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상상도 못했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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