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즈골드 Oct 27. 2020

나는 죄 많은 엄마입니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난 뒤, 짧지만 달콤한 조리원 생활을 보냈다. 조그맣고 가벼운, 작디작은 아가를 안기조차 조심스러웠는데, 능숙한 실력으로 케어 해주시는 전문가 선생님들께 맡기니 몸도, 마음도 세상 편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즈음 이었다. 내가 머무는 방에 청소를 해주셨던 직원분이, 청소를 마치고 난 뒤 창문을 열어 놓으셨는데, 내가 그만 창문이 열려있는 채로 잠이 들었고, 그날 열이 나 버렸다. 열이 나는 아픈 엄마는 조리원에 있을 수 없다. 치료 후, 완치 되었다는 확인서를 받아와야 다시 조리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신생아인 내 아가를 두고 3~4일 동안 조리원을 떠나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모유를 먹이고 싶었는데, 먹일 수가 없었다. 난 입원해 있는 동안 계속 항생제를 맞았다. 항생제를 맞아도 모유를 먹여도 된다고 하셨지만, 찝찝했다. 신생아인 아가에게, 항생제 맞은 엄마의 모유를 먹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분유가 더 믿음이 갔다. 나는 유축기로 계속해서 짜고 버려야만 했다. 태어난 뒤 적어도 한 달은 모유를 꼭 먹이는 것이 좋다고 들었는데, 우리 아가에게 모유를 먹여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렇게 3~4일간의 병원 신세를 지고 나서야 다시 들어온 조리원이였지만, 달콤함은 금방 지나가 버리고 퇴소를 해야 했다. 그땐 알지 못했다. 내가 맞닥뜨려야 할 수많은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조리원 퇴소 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진정한 육아 전쟁은 시작되었다. ‘조리원 천국’이라는 말을 진정 깨달았고, 진심으로 그리웠다.


 나는 육아에 대한 지식도 없고, 모든 행동이 서툴기만 한 초보 엄마였다. 분명 초보 엄마에게 필요한 육아서적을, 그것도 베스트셀러 위주로 임신 때 많이 사다 두었는데, 직장 다니느라 힘들다는 핑계로 읽지도 못했다. 퇴사 후 출산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은 그나마 아가에게 선물해 줄 인형과 배냇저고리를 만드는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울면 배가 고픈가 싶어 맘마를 먹여주고, 그래도 울면 응아나 쉬를 해서 기저귀가 축축해서 우나 싶어 기저귀를 갈아주었는데, 그래도 울 때면 도대체 왜 우는지 이유를 몰라 당황 스러웠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는 했다. 무엇보다 2시간 마다 분유를 먹여야 했기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모유면 그냥 꾸벅꾸벅 졸면서도 물리면 될 것 같은데, 분유수유를 했기에 젖병을 씻고 소독시키고, 정수기가 없어서 매번 물을 끓여야 했다. 그러고 나면 또다시 분유를 먹일 시간이 다가왔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기에 예민해져 있었고, 잠 잘 시간도 없었기에 난 밥도 거의 챙겨먹지 못했다. 정말, 너무나 힘들었었다. 지금은 ‘분유 포트’라는 신세계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없었다. 부족함 많은 초보엄마였던 나는 매일 매일이 힘겹게만 느껴졌다. 친정이나 시댁 어른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오로지 나 혼자서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서럽고 힘들었다. 다른 엄마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며 웃어주기도 하고 행복해 하던데, 아기를 보면 힘이 나서 잘 키우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기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내가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과 머릿속에, 너무나 크게 자리 잡았다. 아기가 옆에 있어도, 날 보고 있어도, 거의 매일, 난 울고 있었다.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엉엉 울기도 했다.


 '이런게 육아 우울증이구나.' 싶었다. '난 모성애가 부족한 나쁜 엄마인가.' 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죄 많은 엄마였다.

이전 05화 첫 아이 임신과 출산, 상상도 못했던 나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