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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an 09. 2022

살기 싫은데, 죽는 게 무서워서

 



죽고 싶은 게 아니고, 죽는 게 무서워서, 걷는다. 생존본능으로, 걸어본다. 이대로 살 수 없다고, 계속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우울한 기분을 떨쳐보자고, 고양이와 따뜻한 이불을 두고, 꾸역꾸역 옷을 입고 나선다. 일하면서 공부한 지 3년째, 올해로 4년째, 처음에 가볍게 생각했던 일들이 점점 몸 덩이를 불려 커지더니, 이제는 뿌리를 뻗어 점점 나아가고 있다. 분명 해야 할 일은 산더미같이 많고, 계획도 많고, 힘도 있는데, 어째서 마음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휘청 휘청거리는지, 모르겠다.


 오늘 보는 필기시험 때문에 지난주부터 신경 쓰다가, 어젯밤엔 결국 잠도 제대로 못 잤고, 계속 꿈을 꿨다. 이상하게 정신분석 관련된 텍스트를 읽으면, 꿈이 계속 기괴하다. 해석할 수 도 없는 이미지들이 쏟아지는데, 머리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하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오후 두 시에 시험을 치르고, 네시 반쯤 밥을 먹고, 일곱 시쯤 집에 들어와서 잠들었다. 잠들었는데, 또 필기시험 관련된 꿈을 꿨다. 고나니 열 시쯤 되었는데, 허기가 져서 아몬드 브리즈 하나를 마시고, 아이스크림 한 개 먹고 나서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서, 집을 나섰다.

  이번 주부터 걷기 시작해서 오늘이 삼일 차. 스트레스가 심해서 집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을 꽁꽁 싸매고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걷는 일은, 운동이라기보다 사색에 가깝다. 달로 착각할 만큼 밝은 가로수 등, 아무도 타지 않은 마을버스, 마스크와 모자로 둘러싸고, 흐릿한 시야로 걸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흐리게 보인다. 빛조차도 흐리고 번져서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지만, 보이지 않아도, 걸을 수 있었다.

  흐느끼면서 걷다 보니까, 탄력이 붙어서, 더 빠르게 걷게 되고, 똑바로 보고 싶어졌다. 벌려 놓은 일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듬고, 걸었다. 계속 걷고, 바람을 맞이하고, 움직임을 느끼면서, 남은 시간과 거리를 체크하면서, 스트레스를 발로 꾹 꾹 밟았다.

  살기 싫다고, 눈물을 뚝 뚝 흘리고, 흐느끼다가, 살겠다 나와서 걷는 게, 대단한 생존본능을 가졌구나, 나란 인간은. 슬프고 우스웠다. 온갖 걱정과 스트레스를 보따리 채 들고 나와서 길에다 버리고 왔다.

 올해는(아직 1월이니까), 걷기 하나로 많은 걸 해낼 수 있을 거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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