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산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고 했고, 타이타닉의 잭 도슨은 매일매일을 소중하게(Make each day count), 순간을 소중히(Make it count)라고 했다. 나는 당장 마음이 바뀌어 내일이 오지 않게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플 때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소용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고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지 말하고 싶지 않고, 게다가 내일이 오지 않는다고 예고할 수도 없다. 그들은 나의 내일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와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일이 오지 않아야 영원이 된다. 돌아오지 않아야 영원이 완성된다. 살아있으면서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기다리는 일은 슬프지 않다. 나의 죽음은 슬프지 않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처럼 오지 않는 죽음을 기다린다. 나에게 고도는 희망이자 죽음이다.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죽음이란, 불안에 사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진실이고, 진리다. 죽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을 뿐,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할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산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대로 살고, 하고 싶은 대로 살고, 내가 되기 위해서 살아간다.
내가 써야 하는 게 무엇이고,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았다. 이제야. 모르겠다는 말로 삶을 연명해 왔고, 눈 뜬 장님이었다. 무슨 환상을 보고 살았을까. 이제는 정말 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려고 사는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 극과 극을 오가며 사는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때 나를 버리고, 어떤 때 나를 만들고 있을지. 지난주는 기분이 내려가고 지금은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내려가면서 올라갈 때가 가장 위험하게 느껴진다. 기분이 좋은 채로 죽고 싶다면 믿을까. 너무 행복해서 진지하게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믿을까. 실제로 그렇다. 어떻게 느끼는 감정인지 나도 모른다. 어디서 파생되었는 지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다. 난 그저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적을 뿐이다. 그게 그냥 내가 되는 방법. 숨기거나 감출 필요 없이.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아무 이유 없이 죽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쓴다. 글을 쓸 때의 내가 나인지 수없이 의심하지만 나다.
내일이 와야 내일.
나는 오늘을 살았다. 내일은 오늘의 나에게 맡긴다.
내 목표는 여전히 생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