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살기가 힘든 모양이다. 진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죽을 것처럼 사는 게 쉬운 일일까. 너무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나는 퇴근하기 전에 생각한다. 고양이 모래 갈아줘야지, 밥 줘야지, 애들 영양제 챙겨줘야지, 초코 피하수액 꼭 해야 되는 데... 하면서 온다. 막상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심슨을 보다가 수다 조금 떨다가 다시 글을 쓰다가 사고 싶은 거 구경하다가 구몬 몇 장 풀고 다시 누워서 책 읽다가 스케줄 보다가 잠이 든다. 어떤 날은 퇴근하자마자 청소하고 고양이 밥도 주고 애들 영양제도 주고 모래도 갈고 다 해버린다. 계획은 항상 있으니까. 몸이 버티냐의 문제지.
집 앞에만 주는 길냥이 밥은 3-4일에 한 번씩 딱 한 군데만 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네 마리를 키우기 때문에 더 이상 개체수를 늘릴 수 없고 구조도 어렵다. 어쩌다 눈에 띄어 구조할 운명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하겠지만 부러 내 마음이 힘든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면 학대받는 동물들이 너무 많은데, 보는 것조차 힘들고 괴로워서 그렇다. 그저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하거나 내 눈앞에 기회가 생기면 나서는 게 전부다. 나의 삶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책임을 질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한다.
그래서 모든 게 다 진심이다. 힘들다. 가끔은 대충 하고 싶어서 대충 해버리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 이런 성격이 너무 싫은데, 싫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는다. 게임처럼 클리어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손해를 보든 안보든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스스로 해내는 것만이 중요하다. 성취감 중독인가. 아니. 모르겠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업무 때문에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받아서 필기하는데 똑같은 필기 내용 쓰다가 화가 나서 4-5장씩 버린 적도 있다. 정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마음은 정리된 적이 없다,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정리하려고 하니까 이 모양 이 꼴이지. 포기하면 편한데. 놓아주고 인정하면 편한데.
머그잔에 담긴 호박 차를 눈을 감고 세 모금 마셨다가 눈을 뜨고 글을 쓰고 잠을 잘 생각을 한다. 자야지. 자야지. 내일도 아침에 운동 갔다가 엄마 아빠랑 점심 먹고 또 한숨 자고 강의 듣고 체력을 비축해야 하니까 자야지. 벌써 5시가 넘어가는 데 아직도 안 자고 이러고 있는 내가 싫지만,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정도까지 왔구나.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나이랑 관계없이 성장한다. 나이를 먹는 만큼 성장하는 게 아니니까 노력하지 않으면 자랄 수 없어. 관심 가지지 않으면 멀리 나아갈 수 없어.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마음을 먹어야만 해. 단단해져야 하고. 이제 정말 많이 좋아졌다. 폭주하더라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시끄러운 마음에게 떨리지만 조용히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고, 그러니까 오늘도 푹 잘 수 있을 거야. 그럴 거야.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