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지만 눈앞에 닥친 하나하나의 일들을 해결해나가고 있다. 그것이 좋은 결과이든 나쁜 결과이든 받아들이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나의 할 일인데, 지난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번주는 어쨌든 뭐라도 했고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 하고 게임하고 잠만 잤다. 머리에 작은 팽이가 계속 돌고 있는 것처럼 어지럽고 조금만 걸어 다니면 헛구역질이 난다. 밥을 먹으면 괜찮은 데 집에만 있어서 밥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 오후 네다섯 시까지 아무것도 안 먹는다. 그리고 저녁에 한 끼 먹거나 자다 깨면 과자 하나 주워 먹거나 한다. 내 고양이들은 오후 여섯 시쯤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나랑 조금 놀다가 또 자다가 오후 열 시부터 또 놀다가 자다가 내가 새벽에 안 자면 또 나랑 놀다가 나보다 먼저 잠이 든다. 나의 시간과 고양이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는 데 왜 생체시계는 다르게 흘러갈까. 무엇이든 그러할까. 삶은 부질없고 의미 없고 모두 다 사라져 버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뭘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하고 열심히 죽고자 하는 것일까. 어지러움이 일주일이상 지속되니 남편이 그랬다.
-MRI 찍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 아니야, 그리고 뇌에 뭐 있다 그러면
치료 안 할 거야.
-초코는 살리고, 너는 왜 안 해?
-몰라, 초코는 치료하고, 난 안 하고 싶어.
진심이냐고, 진심이지.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무기력증. 오랜만에 느껴 보는 무기력증.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나에게 주어진 일도, 책임감도,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지금의 안위만 중요한 무기력증.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워서 핸드폰이랑 아이패드로 게임하거나 동물들 동영상만 주야장천 봤다.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서 타온 약이 말이 안 들어서 수면유도제까지 먹고 있지만 악몽은 꾸지 않았다. 또 한 번 인생의 과도기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과도기, 나의 과도기. 아무것도 몰랐을 십 대, 이십 대 보다, 무엇이 소중한 지, 의미 있는지 더 잘 알고 있는 지금의 시기를, 인생의 우선순위를 놓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계획하는 과도기.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무기력한 채로 인생을 보내도 나쁘지 않겠지. 어떻게든 일을 하고 어떻게든 눈앞에 닥치면 움직일 테니까. 근데 정말 그렇게 살고 싶은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계속 무언가 꼼지락 거리면서 했던 거 아닌가. 어떤 날은 너무 자신감이 없고 지치고 어떤 날은 뭘 해도 잘 될 것 같고. 그런 날들이 반복해서 지나가는 데, 그래도 무기력하게 있진 말자. 일주일이면 충분히 무기력하게 보냈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응원이나 조언도 충분히 받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움직이자. 할 수 있다는 거 아는 데,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 돼버리니까.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무엇이라도 목표한 만큼은 달성하자. 한 번에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하루를 쌓아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야. 아무리 삶의 부질없고 의미가 없다 해도 살아있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믿어. 내가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동안 내 무릎 위에 올라오고 싶다고 쳐다보며 야옹거리는 구름이, 내 고양이들을 봐서라도 살아갈 수 있지. 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무기력하든 사람이든 짐승이든 무엇이든 간에 순수하게 나를 알아봐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있지.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 내가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그런 일이 아닐까. 최선을 다해서. 거기에 나 자신도 포함해서, 아주 많이 사랑해 줘야지. 너무 죽고 싶고, 너무 살고 싶은 나. 잠을 자고, 꿈을 꾸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은 또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야지.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