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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22. 2022

녹차 카스텔라

1.


불면증이 지속된다. 잠을 충분히 잘 수가 없다. 하루 종일 2시간을 밖에 못 잤는데 밤에 잠들지 못한다.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하지? 고통을 익숙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살아야 하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불행하다 말하는 게 왜 잘 못된 일이지? 화가 났다. 화가 났고, 그런 채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내 작은방 창문에 매일 보이는 키 큰 나무에 모르는 중국인 남자가 목을 매달았는지 어쨌든지 그런 채로 죽어있었고, 맞은편 건물에는 고양이가 기괴한 포즈로 죽어 있었다. 물론 경찰들이 잔뜩 와 있고 집 아래는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 시체보다 모여있는 사람들이 더 짜증 나고 싫었다. 사람이 죽은 것보다 출근해야 하는데 이 복잡한 길을 뚫고 지나가는 게 더 싫었다. 형체도 기억나지 않는 시체인데 뭘. 얼굴도 모르고. 꿈에서 깼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무서운 게 아니라 짜증 난다. 그러고 출근하기 싫다. 대체 내가 어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상상도 안 된다. 계속해서 무언갈 죽이고 째고 피를 봐야만 하루를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인가.


2.


쓰려고 했던 글은 이게 아니고, 그래서 엄마랑 이비인후과에 갔던 날, 건물 밖에 나가사키 카스텔라 간판이 걸려있는 걸 보고, 병원 다녀와서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엄마한테도 알려줘야지. 근데 코로나 때문인지 간판만 남아있고 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검색해도 없었다. 해방촌 어딘가에만 있었다. 스타벅스 가기 전에 들른 파리바게뜨에서도 없었다. 파리바게뜨에서 그린티 본 델리슈를 가장 좋아하는 데 그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그대로 잊어버렸다.

나는 꾸준히 작게 많이 아픈데, 이비인후과 다녀와서는 두드러기인지 알러 진지 생겨서 알레르기 약을 먹어야 했다. 아침에는 이비인후과 약 먹고 밤에는 알레르기약을 먹고 있다. 왠지 올해는 내가 힘든 건지 모르겠지만 쉬는 날 엄마 아빠-회사 안 가는 날-랑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데, 이건 우리의 암묵적인 루틴처럼 되었다. 그래서 오늘 쉬는 날이었고, 우리는 순댓국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삼성 서비스 센터에 들러 액정을 새로 붙이고(엄마 것도 새로 붙여줬다) 집 앞에서 헤어지는 데 엄마가 검은 봉지를 건넸다. 알레르기약이라면서 건네준 봉지는 왠지 모르게 부피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아무것도 안 했고, 카카오톡으로 사람들이랑 수다를 떨고 전화를 하고 구몬을 몇 장 풀고 등기로 받은 책을 읽고 그 언니에게 조그만 선물을 하고 또 전화를 하면서 오랜만에 집에 있는 김치를 볶아서 김치볶음밥을 혼자 해 먹고 씻고 자기 전에 닌텐도 게임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검은 봉지를 열었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 알레르기 약과 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그린티 본 델리슈가 들어있는 데, 왜인지 눈물이 그렁그렁,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일까. 얼마나 괴로워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살아있다는 마음을 카스텔라 하나로 느낄 수 있을까.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엄마 아빠에겐 담담하게 고맙다고 웃으면서 카톡으로 전달했지만, 실제 내가 느낀 마음은 그 정도가 아니라 와르르르, 견고하게 쌓아둔 괜찮아-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안 괜찮다. 하나도. 죽을 것만 같다. 죽을 거 같은데 이거 하나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 같은, 지금의 순간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길고 긴 글을 돌아왔다. 내일 출근이 7시이므로 나는 5시 50분쯤엔 일어나야 되는 데 자야 하는데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쓴다. 이건 써야 하는 일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일어나서 쓴다. 쓰고 나면 잠을 어떻게든 잘 거니까. 잠을 못 잤어도, 한 시간을 자도, 밤을 새도, 출근을 하고 일을 한다. 일하다가 쓰러지더라도. 그게 더 괜찮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거 안 괜찮은 거 안다. 내일 출근했다가 타투도 하러 가야 하는 데. 이 카스텔라를 기억하고 싶어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절할 거 같아도 죽을 거 같아도 안 괜찮아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카스텔라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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