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최근에 읽고 있는 죄와 벌에서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친구인 라주미힌이 말 그대로 지껄이는 대사다. "거짓말은 모든 유기체 앞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보유한 특권이며, 거짓말을 지껄이다가 진리에 도달하는 법! 나는 인간이므로 거짓말을 지껄이노라. 우선 열네 번쯤, 아니, 백열네 번쯤 거짓말을 지껄이지 않고는 단 하나의 진리에도 도달하지 못하거니와 이건 그 나름대로 훌륭한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자기 머리로는 거짓말을 지껄일 줄도 모른단 말입니다! 자, 나에게 거짓말을 지껄이되 제발 자기 식으로 지껄여봐라, 그러면 내 너에게 키스를 해 주마. 자기 식으로 거짓말을 지껄이는 것이 무작정 남을 따라 하는 진리보다 거의 더 낫다고 할 수 있지요. 전자의 경우 인간이지만 후자의 경우 겨우 앵무새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나는 진리를 추구하는가? 이 삶의 완벽함을 추구하는가?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욕망하는가. 분명 그러한 욕망의 지점이 존재하지만 내가 겪는 아픔이나 고통, 혹은 행복의 정도만큼 누구나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경우의 수가 다르긴 하겠지만 '보편적인'(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조차 알지 못하지만 이 작은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본적인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언제나 행운을 바라며 불행을 피하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겐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있으므로, 그것을 견뎌내는 게 내 일이다. 죽고 싶은 마음과 싸워 이겨내고 의미 없지만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아내고 사랑하는 고양이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사는 일이 나의 삶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건 일종의 거짓말이고 허위이고 위선이고 무의미한 일들이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에 종종 의미 없이 돈을 많이 벌겠다고 이야기하는 일이나, 울어도 아무 소용없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되는 대로 하자고 말하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할수록 더뎌지고 뒤로 물러가는 현상을 경험했고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해버릴 때가 더 나은 결과가 있었다. 오늘도 엄마에게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여러 번 되물었지만 엄마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오늘도 잘하고 있어, 잘 살고 있어. 울어도 아무 소용없어. 사실 신도림역에 내려서 심장이 내려앉는 고통, 혹은 찢어질 듯 아픈 고통을 오랜만에 느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대낮부터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신도림역에서 헤드폰을 끼고 반팔을 입고 음악을 들으며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엄마랑 같이 기분전환하려고 네일을 예약해 뒀는데 그걸 하러 가면서 마음이 침잠되어 있었다. 울어도 아무 소용없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다시 눈물을 머금고 같이 네일을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흐드러지게 핀 장미 구경도 하고 왔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또 곱씹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부러워하나, 돈 많은 사람, 예쁜 사람, 날씬한 사람, 내가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글 잘 쓰는 작가들), 을 부러워하나. 나는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타인은 또 나를 부러워하고, 또 그런 거지. 그렇게 돌고 돌아가는 거겠지만, 어쨌든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 앵무새가 되지 않고 어떤 거짓말이라도 나를 만들어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나에게 닥쳐오는 심적인 고통이나 현실적인 문제들은 나에게 포함되어 있는 떨어질 수 없는 유기체들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삶'이다. 그러니 오늘도 말해볼까. 오늘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으니, 언제든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이 자리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한 기다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