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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쌤 May 08. 2024

신입생 기념품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산을 넘었다.



현재 이수하고 있는 영재교육 석사과정은 사범대학 아래 여러 과들 중 영재를 길러내는 분야에 해당한다 여겨지는 학과들의 통합 교육과정이다.


그래서 강의가 사범대 교수님 연구실과 행정실이 있는교육관에 주로 개설되는데, 이 건물은 후문 쪽, 그러니까 세브란스 병원 쪽에 위치해 있다. 이번 학기엔 교육관에서 강의를 하나, ECC에서 또 하나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숙박을 정문 쪽에서 해결하고 있어 수업이 없는 날엔 교육관에는 가지 않으려고 계획했다. 너무 멀고 험하기 때문.


하지만 개강 바로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교육관이 있는 산(?)에 올라가기 위해서다. 1박 2일을 서울에 체류하는 시간 동안 학교 안에서 처리할 일들을 모두 마쳐야 하니까. 무엇보다 뭔가 인생 2회 차 같이 느껴지는 이번 대학(원) 생활을 알차고 보람되게 보내고픈 간절함이 있어서다.


개강 2주 전, 조교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반짝이는 투명 비닐에 곱게 포장된 메쉬타입의 파우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입학 축하 기념으로 신입생 기념품을 준비해 두었으니 교육관에 와서 수령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제야 '진짜로 입학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진 속 파우치 실물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동생이 이대 교대원에 들어갈 때 받아온 걸 기억한다. 필통으로 쓰기에도 좋고, 조금 큰 메모장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이화여대> 글씨가 박힌 반투명 포켓을 보며 동생이 초큼 부러웠던 것도 같다. 이제 나도 그걸 받는다고 생각하니 감격이 밀려왔다.


그래서! 산을 넘기로 결심한 거다. 실은 지난밤 교육관에서 수업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조교님과 시간이 맞지 않아 오전으로 약속을 잡았다. 학잠을 입고 열심히 걸어 ECC 옆산을 올랐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포스코관이 있는 언덕 아래 길로 내려가 학관을 지나 드디어 교육관!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 3층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조교님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품을 받아 고이 가방에 넣고 내려왔다. 신입생을 위해 기념품을 선물해 준다는 것에서 학교로부터 환영받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스무 살 대학 새내기였던 시절이 떠오른다. 여기저기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나의 20대를, 그때는 환영하지 못했다. IMF라는 어마어마한 타격은 우리 가정뿐 아니라 나라 전체에 많은 충격을 주었고, 꿈을 버리고 현실을 택했던 청춘들이 방황하던 캠퍼스는 참으로 암울했으니까.


회색빛 기억 너머로 '이번 회차엔 즐거운 신입생으로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샘솟았다.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니 더 감사하고 더 재미있고 신나게 생활하자는 다짐도 해보았다.


뽀지작뽀지작

발걸음 따라 움직이는 비닐포장지 소리에

가방을 열어 기념품 필통을 보며 내게 건네는 인사,


"효주야, 입학 축하해!

지금의 너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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