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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y 22. 2024

장학금 받고 싶어

대학 때 나는 빈둥거리는 몹쓸 녀석이었다. 가계 형편상 선택했던 교대를 다니면서 심각한 부적응 상태에 빠진 채 시간만 낭비하는 어둠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


학교엔 가정 형편을 위해 꿈을 희생한 범생들이 수두룩했다. 저마다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잘했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에 대한 넋두리로 첫 학기를 다 보냈다. 그런데 그중에도 어떤 친구들은 다음 학기부터는 학업에 열중하여 장학금까지 받는 걸 봤다. 하지만 내 시간은 입학식 날에 멈춰 선 채 움직여주지 않았다.


학창 시절, 장학금을 받아본 건 중 3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학교나 타 기관에서 주는 대단한 건 아니었고,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을 위해 마련해 주신 거였다. 영어 교사였던 우리 선생님은 잘 생기거나 발음이 멋진 분은 아니었다. 다른 학교에 전근을 가셔도 독특한 발음 때문에 금방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분의 진짜 매력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슬며시 꺼내놓으실 때 뿜뿜 했다.


선생님은 장학금을 세 번 정도로 나눠주신 것 같다. 당시 학급별로 1등을 하게 되면 보너스 같은 걸 받는 것 같았다. 지도를 잘했기에 주는 봉급 외 특별 사례를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서 따로 떼어서 주신 거다. 진짜 멋진 건 선생님이 학기 초에 그 이야길 먼저 하시지 않고 1등을 하고 나서 하셨다는 거다. 1등 하라 한 번도 강요하지 않고서 ‘결과를 받아보니 1등이더라. 우리 반 모두가 잘해서 그렇다. ’ 하시면서 1차로 성적이 높은 친구들을 먼저 칭찬해 주셨다. 그때 나도 몇 천 원인가를 노란 봉투에 넣은 걸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번부터는 이전 성적과 비교해서 점수가 많이 오른 친구들을 칭찬하고 싶다면서 첫 번째로 장학금 봉투를 받은 친구들은 제외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희한하게도 우리는 그때, 하나도 안 멋진 그 선생님한테 반한 것 같다. 평소에 잘 웃지도 않으시고 특별히 농담을 하시지도 않는 그 선생님한테 뿅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다음 시험 때 우리 학급은 또 1등을 했고 선생님은 약속을 지키셨다. 장학금과는 거리가 먼, 평소에 놀기만 하던 친구가 선생님에게 발굴되었고 장학금을 받으러 나오라고 선생님께서 그를 호명하실 때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도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신다. 선생님의 배려와 사랑에 큰 감동을 받으셨나 보다. 담임선생님이 동생이 다니는 중학교로 전근 가신 후엔 동생네 선생님을 뵈러 가서도 일부러 인사하고 오실 정도로 참 고마워하셨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솔직히 자매가 이화여대 다니면 장학금을 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사해 보니 학부에는 자매가 같이 다니는 경우 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에는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대학원에서 주는 장학금은 없나 하며 학교 어플을 2월 말부터 매일매일 뒤졌다. 그리고 입학하던 주에 ‘면학장려금’이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이 있다는 공지를 발견했다!


수혜에 관한 자료를 보니 대학원 전체에 골고루 나눠줘야 해서 내가 소속된 ‘영재교육 협동과정’에는 장학금 TO가 몇 자리 없었고, 받게 될 금액도 아주 크지 않았다. 하지만 꼭 받고 싶다는 생각에 일단 서류를 다운로드하여 작성했고 첨부할 서류도 모두 꼼꼼하게 챙겨 제출했다.


왜 장학금이 받고 싶었을까?

왜 중 3 때 담임 선생님이 떠오른 걸까?


단순히 '장학퀴즈'에 나온 언니 오빠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똑똑했기에 '장학금'의 주인공이 되는 걸 많이 봐서 '나도 대단한 사람이고 싶어서' 장학금에 목을 맨 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학교에서 마련한 장학금 제도에 도전해 본 건 이제는 적응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싶어서.


내게 장학금은 칭찬보다는 격려의 의미인 듯싶다.


잠시 눈 맞추고 쉬라 말해주는 누군가의 미소나

어깨 위에 잠시 앉았다 날아가는 나비 같은 손길처럼.


잘하고 있다 듣고 싶은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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