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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y 29. 2024

부전공 로망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이 생산하는 값비싼 소원.




책자 한 권만 있으면 어느 과의 학생들이 어떤 장소에 모여 있는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수강신청 기간이란 것이 없기에 개강일에 배부받는 그 책자를 열면 선택하지 않은, 재미없을 게 틀림 없는 강의 계획서가 잔뜩 들어 있다면 어떤 기분이 될까?


저마다 사정이 있고 각자 원하는 것이 있을 테니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큰 캠퍼스와 학업에 열중하는 학우들이 바글거리는 웅장한 도서관을 상상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불태운 나에겐 충격이었다.


교정의 크기도 답답했지만 더 힘들었던 건 교대라는 곳은 '초등교육과'라는 단일 과목을 운영하고 있는 독특한 체제라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이란 걸 꿈도 꿀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타 교대들에는 유아교육과 등의 학과가 더 개설된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교육에 관련된 확장일 뿐이라 별 의미 없어 보였다.


그래서 대학원에 와서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일반대학원' 학제 안에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이 열려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는 큰 학교니까 왠지 될 것 같기도 했고, 제발 부전공 신청이라는 걸 좀 해보고 싶은 간절함으로 학사 가이드를 꼼꼼하게 읽었다.


역시나 있었다! 심지어 대학원 간에도 전문성이 크게 문제가 되는 학과가 아니면 부전공할 수 있도록 열려 있었다! 우와! 대박!


이게 그렇게도 기분 좋을 일이라니. 나도 참.


운영계획서를 읽어보니 부전공을 하게 되면 5개 과목을 더 들어야 한다고 했다. 졸업시험이나 논문과는 상관없고 학위서류에 부전공 무엇 무엇이라고 한 줄 더 들어간단다. 지방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내 입장에서 사실 피곤해질 선택일 수 있는데도 굳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그래서! 부전공 로망을 실천하기로 했다.


근데 대체 무슨 과목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이번엔 과가 너무 많은 것이다! 선택지를 좁히기 위해 흥미있는 것들을 골라봤다. 관심 분야는 '사람의 말과 마음, 정신'에 관한 것이었고, 더 공부해 보고 싶다 느낀 쪽은 '역사, 예술, 사회복지' 정도.


개설된 강좌들을 계속 훑어보고 연구계획서도 열어보고 했더니 한 가지 문제가 더 발견되었다. 주전공 수업시간에는 부전공 과목을 수강할 수 없다는 것. 대학원이 야간 시간에 주요 강의들을 많이 개설하는 경향 때문에 관심 있는 과목들은 밤 시간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학과는 사회복지학과. 다양한 시간대에 듣고 싶은 과목들이 개설되어 있기도 했고 소외계층 영재를 돕는 일을 사회복지 정책적으로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사회복지학과를 부전공으로 결정했다. 이미 사회복지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복지 분야는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알고 싶다.


몇 주간 힘들게 고민한 결과가 결국 나의 장래희망으로 수렴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선택권이 너무 많아서 잠시간 장애가 발생했던 그 시간들, 지금 돌아보니 행복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해보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했는데 내가 봐도 그렇다.


부전공 신청을 위해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 약속을 잡고, 신청서류에 도장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교육관 가는 산을 넘었다. 본관에 제출하러 갔더니 사범대 행정실에 가서 학장님 도장도 받아오라고 해서 또 넘고. 왔다 갔다 핑퐁처럼 튀어 다니면서도 20년 묵은 로망이 이루어질 순간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기꺼이 탁구공이 되어 웃고 있었으니.


대학원 첫 학기가 끝나간다. 다음 학기부터 부전공을 이수할 생각을 하니 솔직히 조금 겁도 난다. 한 학기 다녀보니 체력도 많이 달리고 기말과제 제출일이 다가와 부담스럽다. 신청을 취소하고 편하게 갈까 고민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단 한 학기 해보기로 결정!


소원은 이루어지는 쪽이 즐겁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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