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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n 12. 2024

동생이랑 같이 학교 다니기

'마지막 학기, 언니랑 같이 학교 다니고 싶어.'




동생이 8년 만에 졸업을 한다. 그 마지막 학기, 마지막 수업이 어제 끝났다. 8월 말에 졸업식에만 참여하면 정말로 모든 과정을 완수하게 되는 거다.


작년 가을, 동생의 농담 섞인 진담 한 마디에 같은 학교로 가보겠다 마음먹을 쯔음엔 우리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자주 만나고 반찬을 해서 나누고 같이 식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결혼해서 타 지역에 살면서 무척 그리워했기에 자매애를 뿜뿜하며 재밌는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그러면서 마지막 학기엔 같이 기차 타고 서울로 공부하러 가자고 권유하길래 그러자며 진학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 내가 포항으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의 상경기는 조금 더 설레는 일이 되었다. 먼 곳에 사는 자매가 한 주에 한 번 만나다니! 정말 신이 났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전시회를 다니기로 했다. 서울에 자주 올 수 없으니 왔을 때 가보자면서. 먼저 63 빌딩에 상설전시되고 있는 AI 미디어 아티스트인 레픽 아나돌의 <Machine Simulations : Life and Dreams>을 보러 갔다. 한국인의 공동체적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AI의 꿈을 담아 만든 거라고 하는데 하나의 흰 스크린에서 수많은 작고 큰 점들이 넘쳐 흘러나오는 것만 같은 희한한 작품이었다. 두 번째는 공감각적 전시로 유명한 필립 파레노의 <VOIES, 보이스> 전시 중 <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이라는 작품 안에 동생이 있는 모습이다. 둥둥 떠다니며 고정된 위치에 있지 않은 물고기들 안에서 사람들은 객체이면서 주체이고, 관람객이면서 또한 누군가에겐 보이는 대상이 되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세 번째는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뱅크시의 전시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에 갔을 때다. 아트 테러리스트라는 별명답게 그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담벼락에 작품을 그리거나 설치한 후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 예술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여의도 공원에 꽃놀이를 갔다. 전시회 가느라 탔던 버스가 여의도를 지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벚꽃이 피길 기다렸다가 다시 그 버스에 올랐다.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한강변과 여의도 공원길에는 사람들이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가까운 일산에 살 땐 한 번도 와보지 않았는데 정작 지방에 사니까 왜 이리도 여의도에 가보고 싶은 건지. 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낄낄 거리며 두 정거장쯤 걸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산에 살 때 자주 갔던 인사동과 광화문에 놀러 갔다. 주로 그 일대에서만 놀아서인지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문화복합몰 안녕인사동에 오랜만에 갔더니 새로운 중국요리 식당 <더 차이들>이 오픈한 게 보여서 얼른 들어갔다. 아래 사진은 분명 중화요리다! 사천크림짬뽕이 있길래 시켜봤다. 깔끔하고 담백하면서 부드러워서 맛났다. 아래로 내려오다 라인프렌즈 샵에 들렀다. 동생이 기념품을 사고 나오면서 개구리 풍선 두 마리를 얻어왔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에 책을 보러 갈 일이 있어서 개구리 풍선을 나란히 놓고 사진도 찍었다. 날씨도 좋고 길도 잘 아는 곳이라 참 편안하고 신나는 날이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지냈다. 저녁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관계로 어딘가에서 자야 하는데 동생이 이제까지 지내본 곳 중 가장 좋은 시설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곳을 소개해주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호텔인데 원래 관광객 전문으로 운영하는 곳이라 매우 깨끗하고 조용하다. 담배 냄새도 안 나고 조식도 준다. 아주 만족스럽다. 매주 하루씩 지내기에 방이 계속 바뀌는데 나중에는 방이 달라져도 인테리어의 기본 테마가 똑같아서인지 집에 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학잠을 같이 입었다. 같이 입고 다니진 못하고. 입학하자 말자 샀던 학잠은 가을, 겨울용이라 안쪽이 누비로 되어 있다. 그래서 딱 3월 한 달밖에 입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입학 전부터 일반대학원 홈피에서 일대원 학생들만 주문할 수 있는 과잠이 있다는 걸 검색하다 알고 있었기 때문. 동생을 졸라서 같이 입자고 내가 사주겠다고 설득해서 결국 색깔과 사이즈까지 똑같은 과잠을 주문했다. 몇 주가 지나 각자의 집으로 도착한 과잠을 입고 호텔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 신이 났다. 뭔가 같은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된 기분을 최대한으로 표현해 봤다고나 할까? 실내에서 찍은 이유는 같이 입고 절대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동생 때문. 하지만 동생은 운동 갈 때나 여행 갈 때 이 과잠을 유용하게 입어주고 있어 굉장히 뿌듯하다.




마지막으로 동생 작품 택배 보내고 더위 먹은 이야기. 이번 학기에 동생은 실기 수업을 하나 수강했다. 석고로 자소상을 만들었는데 꽤나 커서 집에 내려가면서 기차에 들고 탈 수 없을 정도의 무게였다. 그래서 택배로 보내기로 했는데 일반 뽁뽁이로는 감당이 안 되어 특수 에어캡을 사들고 올라왔다.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앞 버스가 너무 일찍 가는 바람에 꽤나 많은 인원이 동승하게 되었다. 문제는 내리는 일! 너무나 승객이 많았던 지라 버스 뒤쪽에 앉아있던 우리는 버스 후문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특히 아래 사진 중간에 있는 큰 파란 봉지와 함께 나가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같이 내리는 사람들 틈에 서서 요리조리 봉투를 후문에 까지 가져오는 데 성공! 하지만! 버스 문이 닫히려는 벨 소리가 울리고 있는데 나는 아직 버스카드를 못 찍었고! 동생은 아직 후문까지도 내려오지 못한 상황! 머리 안에 악 소리가 울리면서 나는 봉투를 승강장에 집어던지고, '아저씨, 잠깐 만요!'를 외치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버스 문을 계속 열어두는 소리가 나면서 동생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카드가 찍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리는데 계속 동생이 웃어댔다. 자기가 나오는데 그 뒤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께서 내가 봉투를 집어던지는 걸 보면서 웃기 시작했는데 그걸 듣다가 자기도 웃기 시작했다고. 겨우 내린 우리는 파란 봉투를 보며 2분은 깔깔대면서 웃은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에 석고상을 모셔와서 학교 우체국으로 갔다.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아직 오픈 전이라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날이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편취급국 내부가 시원해서 한숨 돌리고 택배 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석고상을 보신 직원분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주시고 포장재도 넉넉히 내어 주셨다. 덕분에 맘 편히 정말 열정적으로 포장을 시작했다. 에어캡을 바닥과 옆면에 두 세 겹으로 깔고 석고상도 에어캡으로 둘둘 말아 포장했다. 에어캡으로 충만한 상자 안에 그걸 넣고 중간중간 빈 공간에 스티로폼과 일반 뽁뽁이도 충전해서 단단하게 마무리했다.


택배를 붙이고 나오는데 둘 다 땀벅벅이었다. 시원한 게 먹고 싶었지만 체크아웃 시간이 얼마 안 남아 얼른 돌아가 씻고 나왔다. 샤브가 먹고 싶다는 동생을 따라 식당에 갔는데 몸이 이상했다. 눈은 처지고 피곤하면서 말수가 줄어든다. 나중에 보니 더위를 먹었던 건지 시원한 곳에 있으니 다시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로 며칠간 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동생이랑 학교를 같이 다녀 본 건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다. 세 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땐 서로를 잘 모르기도 하고 취미생활이 아예 달라 학창시절엔 같이 놀지 않았다. 하지만 20살이 넘으면서 집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둘이 엄청 비슷한 점이 많고 통하는 면도 많다는 걸 알게 되어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아주 친하게 지낸다.


마흔 넘은 두 여인이, 각자의 가정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기차를 타고 여행하고 호텔에서 하루 지내고 맛난 것도 먹고 재미난 것들 보러 다닐 수 있었다니!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모든 게 남편과 제부, 엄마 덕분인 것 같아 감사하다.


그동안의 학교 생활 노하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수해 준 동생 덕분에 나의 첫 학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누군가를 의지하는 게 이렇게나 가볍고 좋은 거란 걸 동생 덕분에 만끽했던 시간이다. 호텔에서 밤새 나눈 강의 내용이나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다음 학기에도 동생이 같이 서울에 올라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아직 동생의 졸업이 실감 나지 않나 보다.


동생아, 같이 학교 다니자고 해줘서 고마워!

같이 기차 티켓도 예매해 주고 호텔 예약 다 해주고

학교 투어도 시켜주고 버스 태워서 서울역에 보내주고

서울 투어도 시켜줘서 고마워!


그동안 수고 많았어!

앞으로 꿈도 사랑도 널리널리 펼쳐가렴!

사랑해!!


(글 쓸 때는 신났는데 다 쓰고 나니

눈물이 뚝 떨어지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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