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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n 19. 2024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서

드디어 적응한 건가?라는 착각




적응이란 게 중요하다는 걸 예전엔 몰랐다. 우울증에 걸려 신음하면서 각종 책을 뒤지고 연구하면서 나에게 '부적응'이란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는 걸 배웠다. 그렇게 물 위에 둥둥 떠다니던 나를 발견한 후, '적응'에 집착하게 되었던 듯하다.


딱 7주 차였다. 약 15주 정도 이어지는 대학원 수강기간의 절반쯤 왔을 때, ECC에 제일 안쪽에 있는 강의실에 도달하기 위해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쪽으로 가면 되나? 저쪽으로 가야 했었나?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당연하다는 듯 학교에 물들어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다. 안도감과 만족스러움이 가슴에서 차올랐다.


강의실에서도 당당해졌다. 갑자기 발표를 하게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조원들이 바뀌어도 크게 영향받지 않는 것 같은 희한한 느낌. 앞으로도 쭉 즐겁고 위풍당당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자긍심이 새록새록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다음 주, 다시 나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인 나를 만났다. 갑자기 발표를 시킬까 전전긍긍하며 교수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대체 적응이란 건 뭐길래

마음이 이리도 널을 뛰는 건지.


돌아보니 ‘적응’이란 걸 ‘기분’을 기준으로 판단한 건 아닌가 싶다. 기분이 좋아서 뭐든 상관없을 땐 적응한 것 같고, 연구하던 것이 잘 풀리지 않아 용기가 바닥났을 땐 부적응인 것 같아 조마조마했나 보다.


갑자기 한 소녀가 떠오른다. 학기 초, 긴장한 눈빛과 표정으로 친구들과 선생님을 살피던, 얼굴이 하얗고 갈색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던 자그마한 친구. 3~4월 두 달은 아무 말도 없이 지내더니 여름이 다가오자 친구들과 떠들기도 하고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하던 아이. 가끔은 속상한 일이 있어 투덜대기도 하고 부탁할 일이 있다며 미소 지으며 슬쩍 거리를 좁히던 아이. 그의 1년이 스스륵 눈앞을 지나가는 이유는 뭘까.


‘적응은 이런 거야’라고 말해주려고 기억이 낚아올린 선물인가.


누구나 처음에 다 실수하고 잘 모를 수 있어서

긴장되기 마련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서서히 가까워지고 조금씩 말랑해지고

나중엔 툴툴대는 것도 자연스러울 만큼

마음이 풀어지는 그런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고 그러다 보면 너도 괜찮아질 거라고.

그럼 된 거라고.


지난 월요일 밤, 종강을 했다. 돌아보니 아직도 학교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인식도 사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만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이제부터는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는 걸 멈춰야겠다. 시간 지나면 스며들듯 어느샌가 그 공간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질 때가 있겠지 기다려주면 되겠지 뭐.


졸업할 때까지 적응 못해도 큰 일 날 건 없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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