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글을 쓸 때가 따로 있는 것일까?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글 쓰기~ 딱 좋은 나인데
저녁 준비하다가 문득 트로트 한 소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쓰고 싶어 졌다.
인생에서 글을 쓸 때가 따로 있는 것인가에 대해.
공모전과 화난 수필
한참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시기에 집에서 푹~ 쉬다 보니 뭔가 해보고 싶었다. 공모전을 찾아봤다. 시도 쓰고 에세이도 써서 접수했다. 작은 계간지에서 연락이 왔다. 자기네 공모전에 당선되었으므로 할당량(잡지 판매=발간될 때마다 잡지를 몇 권 사고 당선 축하를 받으라고 함)을 채우고 상을 받겠냐 연락이 왔다. 좀 더 큰 곳에서 수상하기를 기대하였으므로 그곳에는 수상하지 않겠다고 연락했다. 수필 쪽으로 수상하고 싶은데, 아무리 써도 예전에 배우고 읽던 '수필 느낌'이 나지 않았다. 동생한테 읽어 봐 달라고 했더니
"수필이 아닌 것 같아. 너무 화가 많이 나 있어."
라는 답을 해 줬다. 그래서 그만뒀다. 아직 글 쓸 때가 아닌가 하면서.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약 3년 후 다음 앱에서 '브런치' 탭을 발견했다. 많은 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나도 쓰고 싶어 졌다. 그러나 '화난 수필'에 대한 기억으로 브런치 가입을 하고도 작가 신청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보내시는 작가님들의 글 중에는 '화난 수필'도 있었다. 사실 꽤 많았다. 그걸 읽으면서 내 인생 스토리도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청할 수 있었다.
현재 소통 중인 작가님들 중에는 나를 먼저 찾아와 주신 분들이 많다. 브런치 초반엔 그분들이 어떻게 찾아오신 건지 몰랐기에 참 신기했다. '화난 수필'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작가님들과 독자님들이 너무 감사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댓글로 소통하면서 거기서 얻은 에너지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오늘로 브런치 작가가 된 지 142일째다. 만약 혼자서 '화난 수필'을 쓰고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임은 너무나 확실하다. (취미로 뭘 배우든 3개월이 최장 기간이라서)
글의 맛을 알 때가 바로 글을 쓸 때!
그렇다면 '글을 쓸 때'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왜 누군가를 글쓰기를 통해 우울증과 번아웃을 극복하는데, 왜 다른 이는 비슷한 시기를 지나며 글을 쓸 수 없을까? 바로 '글쓰기의 매력과 효능'에 대해 알게 된 시기가 글을 쓸 만한 때가 아닐까 한다. 글쓰기란 활동은 지극히 개인적인데 '나'는 소통을 기반으로 한 활동으로서의 글쓰기를 해야만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에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이와 상관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나이보다는 인생이 어떤 계절을 지나든 그 시간을 글로 적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글쓰기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때가 바로 글을 쓸 때일 것이다. 즐겁고 기뻐서든 아프고 슬퍼서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글이라는 도구를 만나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글쓰기가 된다면 그게 바로 '글을 쓸 때'가 아닐까.
가끔 아주 젊은 작가들이 등단하거나 책을 내고 이름을 날리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들과 비슷한 나이일 때는 부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다.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일을 겪었기에 저렇게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글을 열매 맺게 되었는가 싶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인생의 몇 번인 가는 글을 쓸 때가 오는 것 같다. 그러나 시작하는 것뿐 아니라 계속할 수 있어야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회는 잘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에 지금 무척 감사하고 행복하다. 글의 맛을 알아버리면 죽을 때까지 내려놓을 수 없게 되니까. 이 시기를 공감력 뛰어나신 문우님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격하며 오늘도 쓴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글쓰기 딱 좋은 나인데~
이미지출처: Pixabay@fancycrav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