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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정 Jul 18. 2022

부엔 까미노 오늘 하루

떠나라


2014년 그 해. 나를 몰아 세우는 세 가지 일이 있었다.


4월 16일. 그날. 나의 모든 이웃들이 그랬듯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믿겨지지 않아 며칠을 멍하니 보냈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몸은 그저 오늘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야했다. 매일의 일상이니까. 그리고 마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욱 답답해져 갔다. 그러다 그 탓을 남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이 시대 큰 어른이 없어서,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야. 나에게는 소중한 일상이지만, 세상에 더불어 사는 '나' 는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이런 내 모습을 저러한 생각 뒤에라도 두고 싶었다. 사건의 중심에서 빗겨서 내일 아니니 어쩔 수 없어라는 듯한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5월 5일. 아버지께서 이생을 마치시고 본향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아프셨었고, 특히 그즈음 병세가 심해지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라 마음먹었다. 이별의 노래를 만나 아버지를 안심시키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아서면 나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빨리 가셨냐는 생각에 서운했다. 나를 안타까워하는 슬픔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늘 좋은 관계에 민감했다. 불편한 관계를 가져 본 경험이 흔치 않아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해도,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러니 막상 이러한 상황에 닥쳤을 때, 관계의 매듭을 풀기 위해 어찌해야 좋을 지 해결점을 찾기 힘들었다. 세상 어떤 말도 그 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힘이 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사랑 안에 없었고, 날마다 한숨뿐이었다.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의 꿈을 꾸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나를 왕따 시켰던 친구를 꿈에서 만났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친구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환하게 만나는 꿈이었다. 이건 또 어떤 뜻일까. 내가 얼마나 그 친구 때문에 힘들었는데. 아무리 꿈속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다니. 깨고 난 후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미웠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힌 쪽에 그녀를 세워 놓고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억울하게 왕따 당한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나는, 너무 힘들었었다.


열 두살 때도, 2014년 그때도,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이들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불편한 상황 속에 던져진 내겐,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고,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외부적 갈등 요인으로만 생각했다. 그나마 가벼워진 것도 잠시뿐이었다. 내가 느끼는 답답함은 뚫리지 않았다. 내 그릇이 작음을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나의 슬픔, 나의 작음을 느끼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에 휩싸여 온몸이 근질근질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고 나를 다시 세우고 싶은데, 멈추지 않는 일상은 내 중심을 볼 사이도 없게 내 감정을 떠밀며 몰아세웠다. 그렇게 표류하듯 뜬구름같이 매일이 흘렀다. 나를 바로 세워줄 누군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겨졌다. 그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한 마디가 있었다.


떠나라!


그런데 어디로 가지. 대표님께서 여름 방학 동안에 산티아고에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어디든 떠나자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로부터 먼 공간과 시간 안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 그사이 슬그머니 채워져 나를 단단하게 할 에너지를 그리며.


한 달 뒤 9월 2일. 프랑스로 출발했다.

 시간을 걸어도 그늘을 찾기 힘든 너른 들판이 대부분이다.  지난한  가운데, 태양과 바람과  한가운데에서 크신 분과 내가 만난다. 이미  번의 경험이 몸에 각인 되어 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인적 드문 길을 걸으며 실컷 울고, 실컷 웃고, 실컷 걷고 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있다는 것을.


전보다 조금 더 가볍게 짐을 쌌다. 길 위의 짐은 익숙해질 때까지는 아무리 작은 짐도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길 어디에서라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에 작은 기타도 하나 챙겼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무리 커도 짐으로 여겨지지 않는 법인가 보다. 그리고 그 길의 사람들은 나만큼 내 기타를 소중히 여겨주었고, 내 대신 들어주기도 다반수였다. 길 위의 기타는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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