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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정 Jul 18. 2022

부엔 까미노 오늘 하루

소소한 감동

   론세스 바예스로 시작하는 걸음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산으로 올라서자, 빠르게 지쳐갔다. 중턱 즈음 올랐을 뿐인데, 멈추고 싶었다. 지리산 벽소령을 지나 만났던 계곡이 생각났다. 가방을 내리고 서서, 눈앞의 산을 잠시 바라보았다. 기타를 들고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며 나의 노래 ‘불어라 바람아’를 불렀다.

   등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지긋한 나이의 한 남자분이 가슴을 문지르시며, 눈을 감고 고개를 까딱까딱하시며 뭐라 뭐라 말씀하셨다. 내 노래가 자신의 마음을 울렸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첫 관중이었다. 뭔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두 번째 세 번째 노래를 불렀을 때는 이탈리아 친구들이 멈추어 듣고 박수를 보내 주었다. 처음 보는 이의 처음 듣는 노래에 박수를 해준다. 낯 모르는 이국의 어떤이를 아무 이유없이 응원해준다. 뭘 바란 것도 아닌데, 마음이 꽉찬듯 배부른 느낌마저 들었다. 몽글몽글 기분이 좋아져 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앞서 보냈다.


   조금 더 올라 오리손 카페에 들렀다. 가방을 푸는데, 옆 테이블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이 낯선 나라의 익숙하지 않은 발음에 실린 내 이름이 듣기에 좋았다. 돌아보니 오던 길에 큰 바위에서 만났던 캐나다에서 오신 린이라는 분이 다른 순례자들에게 나를 소개 하는 것 같았다.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오신 한스라는 분이 다가오셔서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셨다.

   머뭇거리지 않고 기타를 꺼냈다. 기꺼이 불러 드렸다. 카페 주인도 틀어놓았던 음악을 끄고 창틀에 기대어 서서 함께 들어주셨다. 설명하자니,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정말 그랬다.

   한스는 한껏 웃으며 좋아해주었다. 그리고는 와인 한 잔을 사주셨다. 내 마음도 덩달아 행복했다. 듣는 이가 감동이라고 전해주었을 때, 내 노래가 저들의 가슴으로 스며든다는 그 말이 되돌아와 내게 더 감동이 되었다.

   산을 넘는 동안, 첫 번째 관중이 되어주셨던 분을 다시 만났다. 영국에서 오신 러셀이란 분이셨다. 천천히 산을 즐기시는 그분을 따라 걷는데 무릎이 조금씩 아파왔다. 더 이상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주춤주춤 거리며 걷기 시작하자 감사하게도 러셀이 자신의 스틱 하나를 빌려 주셨다.


    무릎이 아픈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거의 끝을 향하고 있을 때쯤 저만치에서 먼저 걸어갔던 영준이가 영화처럼 나타났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선뜻 맡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내 가방은 영준이의 어깨에 들려 있었다. 이 감동을 글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무거운 가방을 맡길 때 친구는 천사로 보이고 말로 할 수 없이 감사했다.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은 마음은 뭐라도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요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아일랜드인 카힐, 사이먼, 다니엘과 한 자리에서 식사했다.

   감동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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