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면 침대 / 식구
힘겹게 힘겹게 도착한 Zubiri. 동네 입구에 멋들어진 다리가 있었는데 거기 영준이가 기대어 앉아 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음 동네로 가셔야겠네요…. 하는 말에 처음엔 기운이 빠졌지만, 이내 ‘그래?~’ 하면서 애써 웃으며 일단 알베르게로 향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걷고 있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당혹스러웠다.
영준이가 자리 잡은 곳은, 널따란 체육관처럼 생겼는데, 바닥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 매트리스 한 장씩만을 깔고 누워 있었다. 일단 등록처로 찾아갔다. 그나마도 매트리스조차 없다고 해서 공간 이용료로 2유로만 지불하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호기롭게 마을의 수퍼마켓으로 가서 박스 두 개를 얻어 왔다. 천정만 없으면 노숙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겨우 이틀째이다. 아직은 이런 것쯤 아무렇지 않은 컨디션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 이렇게 박스 위에서 잠을 자 보겠는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걸으면서 알베르게 전쟁을 해야만 하는가 질문이 생겼다. 영준이와 이 난관을, 버스로 이동을 하는 것이 나을지, 내가 조금 더 빨리 걷는 게 맞는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의견을 나누어 보자고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같이 일어났다. 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걷고 싶었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다. 정말 힘들 때 혹은 마지막에나 이용해야지, 벌써 버스를 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결정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영준을 깨웠다. 내가 느려서 먼저 출발할 테니 중간 즈음에 만나자고 하고는 헤어졌다. 너무 결정이 늦어지면, 다음 동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통보하듯이 먼저 말해 버렸다. 한 편 왠지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얼른 까미노로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준이가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점심 즈음에 도착한 어느 마을에서 뒤에 따라오던 영준이를 만났다. 약속 장소를 따로 정해 두지 않았었다. 이즈음이면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할 때 정말 귀신같이 영준이가 나타났다. 놀라지는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만 앞서고,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지 영문을 몰라 서로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정해진 동네를 향해 순례자들이 다 한 방향으로 걷다 보니 만남이 어렵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팜플로냐가 큰 도시여서 사람들이 많이 쉴 것 같으니 조금 더 걸어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만나기로 한 다음 마을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 이런, 영준이가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일단 한 알베르게에 가방을 맡기고, 동네 다른 알베르게를 순회하기로 했다. 운 좋게도 첫 번째 찾아간 알베르게에서 한 순례자의 도움으로 영준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만나서 더 반가웠다.
오늘도 저녁 식사는 스파게티. 길 위에서 하루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고, 함께 먹고 마시며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아주 일상적인 그 일이 여기에서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