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2008년 산티아고 첫 여행은 모든 여정을 혼자서 준비하여 혼자 출발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경험했던 모든 순간들이 오롯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삼무곡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산티아고 첫 여행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다시 떠나게 된다면,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누구든지 환영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이렇게 떠나게 되었고, 함께 할 친구도 있었다.
나는 함께 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일 순위로 본인의 신중한 결정을 요청했다. 본인이 직접 배낭을 매고 한 달여의 시간을 걸어야 한다.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고 경험하게 될 지 예측할 수 없다. 이 과정을 누구의 권유만으로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꼭 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도 사실, 많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삼무곡은 그 때까지 매해, 지리산과 설악산을 길게는 3박 4일까지 40리터 배낭에 식량을 나눠지고 산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삼무곡 학생이라면 일단 한 가지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한 달여의 길을 걸어야 하는 그 홀로 걷는 걸음, 한 편 나그네로서 만나는 감동스러운 경험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영준이가 함께 하기로 했다.
파리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같이 일어났다. 독일에 가져가려고 준비한 선물이 들어있는 가방이 따로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들고 걷는 것은 무리였다. 산티아고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날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고 가방도 찾아가기로 결정 했다.
몽파나스 역에서 오전 7시 28분 생장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했다. 바욘을 거쳐 생장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생장에 도착해서 순례자 카드를 만들고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첫 날 부터 가격이 좀 비싼 사설 알베르게를 이용하게 되어 약간 속상했지만 이런 날도 있는 것이라 위로하고 짐을 풀었다.
예쁜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뒷동산에 올라 산책하며 내일의 걸음을 상상도 해 보았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첫 마을의 아름다운 기운도 느껴보았다. 영준이는 안내 책자를 하나 구비했다. 돌아와서는 간단히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한 달간 동행하는, 길 위의 식구가 되는 첫 식사였다. 길 위에서 매일 매 번 가장 귀하고 따뜻한 의식중의 하나가 식사이다. 어떤 만남과 나눔이 기다리고 있을까.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좋을 때도 더 많지만, 둘이 있을 때, 선택은 어느 한 사람이 그 책임을 진다는 느낌이 강해서 결정이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상대가 선택하든 내가 선택하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상황마다 보다 빨리 내 것을 포기하고 보다 빨리 적응하는 방법이다. 감사하게도 영준이의 선택은 늘 탁월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훌륭한 파트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