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Oct 18. 2021

혼자 자라는 꽃




엄마

여기 나팔꽃이 피었네

우리 따서 집에 가져가자



아니 아니

그냥 보기만 해

꽃이 아야 해



아니야 엄마

혼자 자란 꽃은 아프지 않대









얼마전 아이들 하원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린이집 길목에 있는 작은 화분에

보라색 나팔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어요.

화단의 주인은 아마도 그 집에 사시는 할머니인 것 같아요.



  둘째는 꽃만 보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뜯어요. 마구마구 뜯어요.



안돼~!!!

꽃이 아파.

할머니가 슬퍼.



꽃이 아프거나 말거나

할머니가 슬프거나 말거나

꽃이 예뻐서, 만져보고 싶어서

손에 꽉 쥐어 보는 세 살입니다.

그 옆의 여섯 살 언니가 세 살 동생에게 말하기를.




땅 위에서 핀 꽃은 뜯어도 좋아.
혼자 핀 꽃은 아프지 않거든.




하고 다정하게 알려주는 거예요.

'역시,  살보다 여섯 살이 똑똑해'

하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집에 와서 

아이의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혼자 피는 꽃이 아프지 않다고?

왜? 혼자 피는 꽃도 아플 텐데.

혼자 피는 꽃은 혼자 아파서 안 아픈 건가?

그래, 그 아픔을 슬퍼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야.



혼자 피는 꽃은 외로웠을까?

혼자라서 홀가분할까?

혼자 피는 꽃은 혼자 아파서 좋겠다.

혼자 피는 꽃은 자유로워서 좋겠다.



하고요.

길가에 조용히 혼자 피어난 꽃들이

부러워지는 것을 왜일까요.

나를 보살펴준 사람들

또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나의 아픔을 슬퍼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를 잘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는 혼자 자란 꽃이 아니라서

나는 꽃을 키우는 사람이라서

혼자 자란 꽃의  홀가분함이 조금 부러워지는,

그런 날입니다.











이전 08화 체리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