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_1화
제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동네에 계신 한 분을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온 동네의 골칫덩어리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입원하자마자 병원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투약 거부는 기본이고, 담배를 요구하는 등 병원의 규칙을 무시했습니다. 그 환자는 한 달을 겨우 채운 뒤에 퇴원했습니다. 어느 주말,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통화를 하던 아버지가 정색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으로 오시게나. 자네 부모님 인생이 불쌍해서 내 딸이 일하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새 사람이 되라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억울했나?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분한지 전화로 말하지 말고 나를 직접 보고 말을 하시게.”
가끔 강제 입원을 당한 환자들이 협박하는 경우도 있는지라, 혹 그분이 아버지께 어떤 위협이라도 가하면 어떡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하셨습니다.
올해 아버지는 건강 검진을 받으셨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위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전이 소견은 없다는 담당 교수님 말씀에 가족들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수술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한 수술이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주변 림프절과 복막에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기약 없는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며 여생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모든 사실을 역시나 의연하게 받아들이십니다. “살 만큼 살았는데 괜히 배를 갈라서 고생을 하네. 이리 아플 줄 알았으면 수술 안 할 걸 그랬다”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내가 얼른 치료 잘 받고 갈 테니 애들 말 잘 듣고 있어”라며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십여 년 전, 어머니는 뇌출혈로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진 것은 물론, 지능 지수도 떨어지고 고집도 세지셨습니다. 이런 어머니를 달래고 보살피는 일을 아버지 혼자 감당해오셨는데, 이제 자식들이 그 몫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새삼 아버지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힘든 일이 닥쳤을 텐데, 어떻게 자신을 잘 추스를 수 있었을까. 자신의 불안, 화, 분노를 다스리는 것을 넘어 가족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나눠주고, 심지어 동네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저는 인간이 감정과 이성과 행동의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 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중에 감정이 먼저 나타납니다. 불안한 느낌, 분노의 느낌, 유쾌한 느낌, 행복한 느낌으로서 감정이 우선 드러나지요. 그 뒤에 그 감정의 이유를 찾기 위해 이성이 등장합니다. 무엇인가가 불확실하구나, 나의 생각이 거부당했구나,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결론은 행동입니다. 어떤 행동을 선택하느냐는 같은 감정, 같은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자리를 피하거나, 대차게 항의하거나, 끌어안고 감사의 인사를 할 수도 있겠죠. 이 일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감정-이성-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스스로 흔쾌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일치된 삶입니다.
이 세 가지 과정 중에서 시발점이 되는 감정의 단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첫 단추를 바로 채워야 옷을 제대로 입을 수 있듯이, 감정의 단계가 그렇습니다. 오해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나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일치하는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삶의 평온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비는 기도문」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시며, 또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제가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바로 이런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