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BM
(1) 비즈니스 모델(BM)
그래서 뭐 하는 회사인가요
며칠 전 연락 온 헤드헌터가 내 이력을 과거부터 차례로 훑으며 의아하단 듯 물었다. 음, 세 번째 회사까진 수긍이 가는데 네 번째 회사(A: 첫 스타트업)로의 이직 사유가 짐작이 잘 안 되네요? 워낙 작은 회사로 가셔서요.
A 대표의 재창업으로 소속이 변경된 경우를 제하면 총 다섯 기업에 있었고 네 번 이직을 했다. 기업 당 평균 재직 기간은 3.2개월. 보수적인 기업이라면 반기지 않을 이직 다회자가 됐다. 게다가 마지막 직장이 망한 스타트업이었으니 누군가의 시각에선 3년마다 어김없이 엉덩이를 들썩이는 약한 인내심과 형편없는 안목을 가진 구직자일지 모른다. 설명이 필요했다.
헤드헌터의 말이 이어졌다. A부터 최근 회사까지 이직 사유와 비즈니스 모델, 매출, 직원 수 같은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는 A, A'(A대표가 재창업한 곳) 그리고 B가 뭐 하는 회사인지 몰랐다. 비즈니스 모델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이력서를 보며 통화하는 것 같은데 B 기업명 한 글자 ‘ㅏ’를 ‘ㅓ’로 잘못 불렀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 번째 회사까지는 구직자가 되기 전부터 소비자로서 BM을 잘 알고 있었다. 공시자료에서 재무현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기사와 인터뷰 자료가 풍부했다. 헤드헌터도 그랬겠지. B를 잘못 부른 것 외에 그에겐 잘못이 없었다.
이직 베테랑의 오만
A회사의 면접을 앞두고 과거 이직 때와 유사한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공개 자료가 별로 없어 당황했지만 다행히 모회사의 재무현황이 공시되어 있었다. 모회사는 현금성 자산이 적지 않았고 수익을 내고 있었다. 합격 통보 후, 깊이 고민하지 않고 A 입사를 결정했다. A 의 BM 지속성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 그려보지 않은 건 아니나 개인의 생활과 커리어를 먼저 고민했다. 또 출퇴근 동선이 어떠한가, 점심은 주로 외식인가 건물에 구내식당이 있나, 팀원들 성격이 유순할까 자기주장이 강할까, 칼퇴근이 가능한가 와 같은 작은 문제들이 더 궁금했다.
그런데 입사 후 3일 정도 지났을까. 자금집행 직전 잔고가 모자란다는 걸 알았다. 서둘러 외부에 있는 대표에게 연락했다. 그의 도움으로 퇴근 직전 간신히 모회사로부터 차입을 해와 이체를 완료했다. 잔고가 충분한지 미리 파악하지 않은 건 내 명백한 불찰이었지만 당일에 급하게 요청을 받았고 잔고 부족은 상상조차 못 했다. 사건이 해결되고 손바닥의 땀이 식어갈 때 즈음 젠틀맨 대표님이 연락을 해왔다. 많이 놀라셨죠? 입사하신 지 얼마 안 됐는데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가끔 이렇게 자금 타이밍이 안 맞을 때가 있어요.
그때부터였다. 아, 여기 스타트업이었지. 드디어 회사의 생존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BM은 창업의 근간이자 구직자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정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 모델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대표의 생각이 시발점이 되어 탄생한다. 또한 기업의 정의이자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누구에게 제공해서 지속적으로 돈을 벌고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BM이다. 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입사 전에도 후에도 가장 중요한 것
이 중요한 BM을 전환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기존 모델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혹은 새로운 기회가 보일 때 쓰는 전략으로 피보팅(Pivoting)이라고 부른다. 피보팅은 한동안 B 대표님이 주간 미팅에서 부르짖었던 단어다. 당시 핀테크 플랫폼 B는 방문자 수, 회원 수, 매출 등 몇 달간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타겟층을 넓혀 플랫폼을 활성화하기 위해 진입장벽이 높은 투자 행위 대신 가볍게 소비 행위를 유도할 수 있는 신규 서비스를 출시했다. 돌아보면 결과야 어찌 됐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건 분명하다. BM은 스타트업 합류 후에도 늘 고민해야 할 주제다. 회사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방향에 따라 생존이 갈린다.
B에서 면접관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우리 회사의 BM에 대해 알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는 면접자 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는 걸 기억한다. BM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입사하지 않는 게 좋다. 확신이 분명해도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걸 현재의 나는 확신한다. 구직자는 기업의 BM이 '계획 - 상품 및 서비스화 - 매출 발생 - 이익 실현' 중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도 미리 파악해야 한다. 초기 단계일수록 각오는 더 대단해야 할 것이다. 매출 발생과 이익실현 단계까지 왔더라도 안심하긴 이르다. 미래 시장성과 지속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현재 경쟁사뿐 아니라 잠재적 경쟁사 출현으로 인한 시장 점유율 변화도 예측해야 한다. 규제 문제가 남아 있다면 더 곤란하다. 아직 계획 단계이고 법률 규제를 통과해야만 상품 및 서비스화가 가능한 BM이라면 1~2년 안에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까지 실감 나게 상상해 보아야 한다.
결국 돈을 벌 수 있나의 문제
BM은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팔 것인가로 시작하지만 결론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냐가 핵심이다. 보기엔 그럴 듯 해 보이는 BM도 내부에 들어가 보면 허울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돈을 버는 혹은 앞으로 돈을 벌 수 있는 BM인지 사전에 꼭 알아보길 바라며 만약 후자라면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가능성의 높낮이가 어떠한지, 그때까지 회사가 생존가능한지 반드시 확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