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낼 때 편집자가 필요한가요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노는 걸 좋아해요.
혼자 놀 때조차도 어른이 느슨하게 지켜봐 주길 바라거든요.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렇죠.”
내가 중얼거린다.
“꼭 작가들 같네요.”
편집자의 응시 없이 완성되는 원고는 없으니 말이다.
자신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존재들 때문에 작가는 겨우 쓴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잘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언어를 배우기 이전부터 우리 안에 태동했을 것이다.
<끝내주는 인생>_이슬아 지음
책을 읽고 밥 먹듯이 글을 쓴다.
사실 글은 늘 써왔다. 보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 뿐이다.
20세를 기점으로 노트가 아닌
블로그에도 쓰고, 싸이월드에도 쓰고 브런치에도 쓰고 페이스북에도 썼다.
누군가 보든 안 보든 쓰고 또 썼다.
좋아요 한 두 개에도 설레며 쓴 글도 있고,
내면적 경극이라도 하듯 오감을 다해서 혼나 신나서 쓴 글도 있다.
그러다 책을 내게 됐다.
늘 밥 먹듯 자연스레 쓰는 글이기에 그 또한 자연스러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게 웬걸.
촌스러운 시골쥐처럼 너무도 부담과 긴장이 됐다.
문구 하나 디자인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일을 할 때 완벽주의와 꽤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사실 이건 제삼자가 평가해 줘야 정확하지만,
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깐깐한 상사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는 게으른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책에 있어서는 그게 안 됐다.
가난과 사랑은 절대 숨길 수 없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렇게 열병 같은 첫 책을 내고 두 번째 책 원고를 보내고 부록등을 가다듬고 있다.
사실 훨씬 더 빨리 두 번째 책이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출간 앞에서는 능구렁이처럼 행동이 잘 안 됐다.
어차피 자주 쓰는 글, 출판사 계약 전에 혼자 쭉 써서 원고를 보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출간을 한 번 해봤답시고, 뭔가 편집자의 가이드와 의견 조율 없이 하자니 진도가 안 나갔고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사실 게으름에 준거한 핑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던 중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에서 힌트를 찾았다.
실제로 이슬아 작가가 좋아하는 편집자와의 대화에서 인용한 것인데,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놀아주지 않더라도 어른들이 옆에서 느슨하게 바라봐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여에서 뭐 하는 것도 없는데 “엄마 이거 보고 있어.”라고 보초 시키는 경우도 꽤 있다.
그냥 보기만 하는 입장으로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도 말이다.
편집자 또한 마감을 종용하거나 그건 아니다 혹은 그것보다는 이게 낫다는 가이드를 주지만
그 느슨한 응시가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혼자 글을 쓰는 건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허망한 일이다.
책 한 권 달랑 내 본 입장에서 이렇게 단정 짓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지만,
작은 기고글이라도 기한과 피드백이 있다는 것은 똑같은 글을 쓰는 시간일지라도 그 시간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는 듯했다.
거기에 소정의 원고료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내 마음이다.
그러나 그것을 잘, 진심으로 하게 하는 데는 꽤 많은 사람의 애정과 수고로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나 또한 옹졸한 마음을 더더욱 덜어내고
세상에 나올 두 번째 책에 많은 이들이 얻어갈 수 있는 무엇을 기꺼이 퍼주고 싶을 뿐이다.